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정부대전청사에서 버스를 타고 중리네거리에 내려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날 경찰들은 집회신고를 내고 행진코스도 알려주었지만 교통통제를 전혀 하지 않아 많은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다.
자리에 참석한 수많은 동지들과 시민들은 침착하게 열사의 영정과 만장을 들고 행진을 시작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아파트에서, 인도에서 이 장엄한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을 하였다. 청소년들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다. 장엄하고 엄숙한 행진이었지만 대전시민들과 모두가 하나되는 평화로운 행진이었다.
그러나 중앙병원 근처 네거리에 도달했을 때 폭력경찰은 닭장차와 살수차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저지선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중앙병원을 최종 목적지로 한 행진의 마지막 부분을 가로 막은 것이다. 행진 참가자들은 분노하였다. 행진 대열이 그대로 뚫고 나가려고 하자 경찰은 전투경찰이 아닌 일반 의경들을 앞줄에 세워 방패막이로 삼았다. 이런 비열한 행위가 참가자들의 분노를 더욱 촉발시켰다.
참가자들은 몸으로 그대로 앞으로 밀고 나아갔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전경들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은 손에 든 만장으로 맞섰다. 이어 전경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살수차, 형광액, 최루액을 뿌려댔지만, 분노한 참가자들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행진 참가자들은 그대로 전경들을 밀어내었고, 집회신고서에 적혀있던 중앙병원을 넘어 열사가 목숨을 끊은 대한통운 앞까지 진격하였다. 약 2km를 단결된 힘으로 공권력을 밀어 낸 것이었다.
대한통운 앞에서 다시 대치선이 형성되었다. 전경들은 대한통운을 최후 보루로 삼은 듯 했다. 새카맣게 집결한 경찰들의 모습은 정권과 자본의 하수인으로 자청한 듯이 보였다.
행진 참가자들은 열사의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대한통운 안까지 진격해 들어가자고 소리 높였다. 그러나 지도부는 더 이상 부상자나 소모적 희생이 나와선 안된다는 판단을 했다. 문제는 정권과 자본에 직격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총파업투쟁의 실천에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지도부는 대한통운 현장에서 마무리 정리집회를 하고 정리, 해산을 명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아쉽고 원통하지만 지도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침을 따라 향후 총파업을 반드시 성사시킨다는 결의를 다지고 침착하게 정리를 하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경찰의 비열하고 야수적인 만행이 시작되었다. 대오를 돌려 열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중앙병원으로 향하자 뒤에서 진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닭장차로 중간이 가로막혀 있어 병목현상이 일어나 대오는 일순간 흐트러졌다. 서로 넘어지고 밟히고 종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하였다. 경찰은 “빨리 빨리 가! 이 개××들아!”, “이 빨갱이 ××들, 아까까진 좋았지?”는 등 입에 담지 못한 욕설을 내뱉으며 무차별적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폭행당하며 무차별 연행당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날 모든 나들목을 통제하여 지방으로 내려가는 참석자들까지 연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복경찰까지 배치되어 조끼를 입었거나 머리띠를 한 사람들이 있으면 무차별 연행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마치 계엄령이 선포 된 듯하였다.
이날 밤 대전의 병원에는 부상자들로 넘쳐났다. 대전 일대는 응급차들의 싸이렌 소리로 가득찼다. 지옥같은 밤이었다.
현재까지 연행자만 해도 무려 457명이다. 5월 16일 대전지역에서 사상최대의 연행자가 발생했다. 80년 5월, 공권력과 군대에 의해 민중들을 학살했던 역사가 29년이 지난 오늘에도 자행되고 있음이 백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현재 투쟁 지도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대책마련을 위해 논의 중에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