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선 여성들 ④] 요양보호사의 눈물
몸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 김인숙(55·가명) 씨. 그는 환자들에게 받는 스트레스로 늘 골머리를 앓는다. 일을 하면서 겪는 육체적 피로도 상당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 집을 직접 방문하는 재가 요양사인 김 씨는 항상 방문하는 집의 문을 열기 전 "오늘은 별 탈이 없어야 할 텐데…"라며 마음을 졸인다. 요양이 필요한 노인과 단 둘이 집에 있을 때 이따금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격적 대우 받지 못하는 요양보호사들
얼마 전에는 낮 시간에 요양을 받던 노인이 갑자기 시간대를 밤으로 옮겼다.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당일날 깜짝 놀랐다. 자신이 올 시간에 친구를 데려와 술상을 봐놓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예 희롱을 하려고 작정을 한 것이다.
예전에는 노인을 목욕시키는데, 갑자기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만져 달라고 강요하는 일도 있었다. 너무 황당해 뛰쳐나오긴 했지만 이후 일을 위해 그 집을 방문하는 게 두려워졌다.
자신을 요양보호사가 아닌 가정부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요양 대상의 부인이 김장을 하자고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규정상 요양보호사는 환자만을 돌보기로 돼 있지만 거실 청소, 싱크대 청소 등을 강요하는 집들도 상당수 있다.
▲노인을 돌보고 있는 요양보호사(자료 사진). ⓒ연합뉴스 |
"마치 환자 집에 식모살이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는 '네가 원하는(돈) 걸 내가 해주었으니, 이제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는 식으로 대하죠. 식모나 성희롱 대상자가 되려고 요양보호사가 된 건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이것을 단호하게 거부하기는 어렵다. 재가 요양보호사의 임금은 월급제가 아닌 시급제이기에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있다. 더구나 자신을 가정집으로 파견하는 재가 요양원에서는 그런 일도 하라고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요양원 간 환자 유치에 불을 켜고 있다.
대상자는 5만 명, 보호사는 50만 명…"대상자 유치 위한 쟁탈전 심해"
김인숙 씨는 2008년 7월 1일부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제정되면서 정식 요양보호사가 됐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치매나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 노인을 대상으로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일상 활동에 도움을 주고자 국가가 요양보호사 비용을 일정부분 내는 제도다. 이로 인해 환자와 1대 1 계약을 맺었던 간병인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부작용도 상당하다. 수요와 공급이 비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8년 요양이 필요한 노인, 즉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적용받을 수 있는 인원을 5만 명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2009년 5월 기준으로 요양보호사는 49만56명인 것으로 추산됐다. 이중 고용된 요양보호사는 12만342명. 실질 취업률로 보면 전체의 4분의 1만이 취업이 된 상태다.
요양보호사들이 대상자를 유치하고자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요양 시설에 소속돼 있는 요양보호사는 그나마 낫지만 재가 시설에 소속돼 있는 요양보호사의 상황은 심각하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노인 급수에 따라 1급과 2급은 요양소로, 3급은 재가, 즉 가정에서 요양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4급 판정을 받은 노인은 보험을 적용받지 못한다.
김 씨 역시 마찬가지다. 일을 구하는 게 요원하다. 게다가 돌보던 요양 보호 대상자가 시설이나 병원으로 입소하게 되거나 다른 요양보호사로 바꾸면 벌이가 줄어들어 생활이 전혀 보장이 안 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요양보호 대상자가 이를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성희롱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구조상 김 씨를 구제해줄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자신을 보호해줘야 하는 요양원에서는 이를 묵인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일했던 간병인이 차라리 나을 듯"
게다가 재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그가 받는 돈은 한 달 평균 60만 원. 환자가 없기도 하지만 한 달 80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악용한 재가 요양소에서 80시간 이하로 근무 시간을 배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재가 요양소에서 환자를 데리고 올 경우에 한해 요양보호사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요양보호사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9년 9월 사회공공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임신한 장기 요양 여성 종사자 중 10퍼센트 이상이 과로로 유산을 경험했다. 140여 건의 교통 사고와 성희롱, 도둑 누명 등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업무를 소화하기 위해 링거를 맞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요즘 간병인 생활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간병인 생활은 요양 보호사보다 육체적으로 곱절은 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 씨였다.
김 씨는 간병인 시절, 끼니는 병원 계단에서 주먹밥으로 때우고 환자 옆 간이침대에서 선잠을 잤다. 중증 환자의 경우 2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주지 않으면 욕창이 생기기에 늘 신경을 써야 했다. 게다가 대소변 받는 것부터 시작해 몸을 씻기는 일, 밥 먹이는 것까지 담당했다.
무엇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이 그를 괴롭혔다. 잠을 자다가도 환자 기침소리에 깨고, 뒤척이는 소리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때 잠을 거의 자지 못한 관계로 안구 건조증에 걸려 아직도 고생을 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 꼬박 일하고 받는 돈은 4만5000원. 지금도 이 가격은 변화가 없다.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하는 돈이다. 그럼에도 김 씨는 일자리도 없을 뿐더러 모멸감을 느끼며 일하는 요양보호사보다는 간병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간병인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프레시안(허환주) |
"내 나이 50줄에 다시 무슨 일을 시작 할 수 있겠나"
김 씨는 이쪽(간병인, 요양보호사) 말고 다른 직업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평생 동안 간병인 일을 해왔다. 그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남편의 실직 이후다. 남편은 실직 후 조건만 따지며 취업을 하지 않았다. 당시 집에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 도시락은 고사하고 차비도 챙겨 주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남편은 요지부동이었다.
김 씨는 결국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결혼 전, 개인 병원 간호조무사를 한 경험을 살려 간병인을 시작했다. 이왕이면 해봤던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가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고 이 일에 뛰어 든 것은 간병인과 비슷한 일이고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선전을 접하고서였다. 하지만 정작 되고 난 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생각하진 못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소일, 식당일뿐이었다. 이에 차라리 간병인을 다시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배우고 일해 본 게 이것 밖에 없는데 내 나이 50줄에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와서 식당일이나 청소 일을 하자니 막막하고 두려워요."
"4급까지 대상자 확대 필요"
노인 요양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한국은 복지 부분에서 상당한 진척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수급 자격을 중증으로 제한하고 급여 수준을 최소한으로 설정, 노인 문제의 사회화와 공식화에 일정 부분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2009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총재정은 2조1000억 원. 이는 GDP의 0.2퍼센트에 해당한다. 스웨덴 2.74퍼센트, 노르웨이 1.85퍼센트, 영국 0.89퍼센트, 일본 0.76퍼센트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렇다보니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실제 수혜자는 총 노인인구의 3.9퍼센트, 전체 인구 대비 0.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수발 보험 수급자가 전 국민의 약 2.5퍼센트를 포괄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일본도 노인 인구 대비 10퍼센트 이상을 포괄하고 있다. 전 국민의 3.3퍼센트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복지를 확충하고 요양보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현행 3등급까지로 규정돼 있는 보험 대상을 4급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문설희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사무차장은 "보험 실시 2주년이 되는 올 7월에는 4급 판정을 받은 노인까지도 보험 대상으로 선정하겠다고 정부에서는 약속을 했지만 정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아무런 답이 없다"며 "노인 복지와 요양보호사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보험 대상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은 더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요구했다.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요양보험 시행 구조를 민간에 맡겨 놓은 게 지금의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며 "민간 제가 센터, 요양소 등은 수익 발생을 위해 보호사들을 착취하는 구조를 견고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이 아닌 공공이 시장 재편해야 현 문제 해결"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정부가 이 부분에 개입하지 않은 건 자영업자를 늘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며 "정부는 통합적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이미 민간 주도로 형성된 요양보험 시장에서는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기관이나 제도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어렵다는 것.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시장 중심으로 요양보험 제도를 짰기 때문에 현재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대상은 요양보호사"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공이 주도를 하는 제도가 되기 전에는 이러한 문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에서 요양보험제도를 '모르쇠'로 일관하는 한, 요양보호사의 한 숨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정부는 이 문제를 두고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직접 인건비 비중을 75퍼센트로 강화하고 시설 관리 책임자 역할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과다 지역은 시설 설치 제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양보호사인 김인숙 씨가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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