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집짓기, 생태건축의 재발견
김성원(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메니저)
올바른 생태건축의 이해
- 지속가능한 삶을 파괴하는 현대건축의 문제
현대건축은 지속가능한 삶을 위협하고 있다. 산업폐기물의 40%를 현대 건축폐기물이 차지하고 있다. 건축산업은 1차 에너지의 40%를 소비하고 있는 데 이 가운데 주택분야에서 60%의 에너지가 소비되고 있다. 북미의 경우 주택 소유에 생애전재산의 40%를 투자한다. 부동산 광풍에 휩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생애재산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말 그대로 주택문제는 우리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옥죈다. 현대건축은 건축과정에서도 전문화를 통해 건축과정에서 건축주를 소외시켜 버린다. 적어도 도시인들에게 집은 더 이상 짓는 것이 아니라 사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방식의 건축문화, 집갖기 문화는 삶을 행복하게 지속할 수 없게 만든다.
- 옛 건축전통 속에 있는 생태건축의 원형
해답은 오래된 미래에 있다. 50여년 전까지만해도 농촌의 대다수 농가들은 마을 목수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그 마을 뒷산의 나무와 흙과 돌을 이용해서 마을공동체가 함께 지었다. 자연자재를 이용하는 건강한 생태건축 그 자체였다. 전통적인 집짓기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생활기술이자 환경에 영향을 덜 끼치는 적정기술이었다. 집 주인이 스스로 그리고 마을 공동체와 함께 짓는 공동체 건축이었고 관계건축이었다. 지역의 풍토와 문화, 기후, 삶의 방식을 반영하여 지역건축양식으로 표현되는 지역토착 건축이었다. 건축과정에서 외부의 인력과 외부의 자원을 필요치 않고 내부의 인력과 자원을 활용하므로 경제적 유출이 없는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건축이었다. 애초부터 농촌의 옛 건축은 지역화건축이었다. 생태건축의 원형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오랜동안 있어왔다. 다만 현대화의 물결로 우리는 그 소중한 건축적 자원과 가치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 생태건축의 다섯가지 측면
생태건축은 자연자재를 이용한 건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태건축은 건축부지, 건축 디자인, 건축 시공, 주거생활, 건축 폐기 등 5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건축부지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하고 부지 조성 시 환경에 대한 영향을 줄이는 건축이다. 건축 디자인 측면에서 생태건축의 디자인은 햇빛과 바람 등 자연조건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건축이다. 또한 지역의 풍토와 기후, 문화를 반영하여 지역토착의 건축양식을 구현하는 건축이다. 건축 시공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자연자재를 이용하고, 건축 기술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중간기술이며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적정기술을 활용한다. 건축과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저에너지 건축이며, 이웃 공동체와 더불어 짓는 공동체 건축이자 관계건축이다. 주거생활적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거주하면서 에너지 이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에너지절약형 건축이며 자연대류와 태양광을 최대한 이용한다. 건축물의 사용 이후 건축폐기적 측면에서 생태건축은 그 자체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건축폐기물이 나온다 해도 극히 적은 건축이며 많은 건축자재를 재활용,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해지고 있는 생태건축 방법들
인류는 전세계 각지에서 예로부터 흙과 나무, 돌 등 자연자재를 이용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집을 지어왔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문화적, 환경적 요인에 따라 다양해진 생태건축 방식들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 건축방식이 100여가지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7년전부터 전통적인 흙건축 방식에 덧붙여 해외 생태건축 방식들이 소개되며 더욱더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흙과 돌, 짚을 섞어 짓는 토담집, 통나무와 흙반죽을 번갈아 쌓는 목천흙집(cordwood), 흙벽돌집, 옛날 전통 살림집이나 한옥에 주로 적용되던 심벽 맞벽치기, 통나무를 교차하도록 엇갈려 맞물리게 쌓은 후 그 사이를 진흙으로 메꾸는 귀틀집 정도는 익히 들어왔을터. 근래엔 잊혀졌다 정기용, 김석균, 이일우 등 건축가들에 의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틀에 흙을 다져 벽을 쌓는 담틀(다짐)흙집, 제가 국내 최초로 짓고 소개한 부대자루에 흙을 담아 짓는 흙부대집, 진흙에 짚을 섞은 된반죽을 쌓아 짓는 거섶흙집(cob house), 흙반죽을 공처럼 둥글게 반죽해서 척척 쌓아가며 짓는 알매흙집, 스트로베일연구회가 국내 보급하고 있는 압축볏짚단으로 벽체를 만들고 흙미장을 하는 압축볏짚단건축(strawbale house), 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의 현목 선생이 시도하고 있는 다다미 속에 들어가는 압축볏짚판재를 나무골조 안밖으로 붙인 후 미장하는 일명 볏짚다다미집, 나무골조 안밖으로 욋대나 쫄대를 줄줄이 붙인 이중심벽골조 안에 흙이나 석회로 짚을 버무려 다져 넣고 흙미장하는 짚버무리(light clay, light cob)건축, 역시 이중심벽 안에 왕겨숯(훈탄)을 넣고 미장하는 이중심벽방식, 목포대 건축과에서 보급하고 있는 종이 계란판과 진흙반죽을 번갈아 쌓아서 벽을 만드는 계란판흙집 등 해외로부터 수입되거나 옛 방식을 복원한 경우, 새롭게 개발된 다양한 건축 방법들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단지 흙, 돌, 나무 등 자연자재에 치중하던 생태건축이 다양한 건축공법으로 분화되어 경쟁하거나 융합되고 있는 상황이다.
‘살림’의 집, 생태건축
시멘트와 철강이 주재료인 관행건축에 비해 자재를 만들고 가공하는 데 드는 화석 에너지 소모와 배기가스 배출 등 환경영향이 적은 생태건축은 ‘죽임’의 건축이 아닌 ‘살림’의 건축이다. 시멘트 박스를 쌓아놓은 것에 다름아닌 아파트와 시멘트 건물의 유해물질 피해는 장기간에 걸쳐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의 건강과 정신을 해치고 죽인다. 에너지와 환경, 건강에 대한 대안으로 전세계 여러나라에서 흙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고 현재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인 15억 인구가 흙집에서 살고 있다.
열을 저장하는 흙, 단열재로 활용되는 자연재료들
흙집은 보통 춥다고 생각한다. 전통 한옥살림집의 벽체는 주로 심벽맞벽치기 방식으로 지어지는 데 벽체 두께는 15cm 이하이다. 게다가 목구조와 흙벽의 수축률 차이로 틈새가 많아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드는 추운 집이 되고 만다. 지붕과 바닥, 창호 단열은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집 지을 요량으로 집 구경 오는 이들은 흔히 “벽은 얼마나 두껍나요? 겨울에 기름은 얼마나 들어가나요?”라는 질문을 자주한다. 벽만 두꺼우면 단열이 잘되어 난방비를 줄일 수 있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묻는 질문이다. 건축물의 겨울철 난방 부하를 살펴보면 냉기침투 35%, 창 23%, 지붕 15%, 벽 15%, 바닥 9%, 문 3%입니다. 여름철 냉방부하는 습기유입 25%, 창 23%,지붕 21%, 실내습기 13%, 벽12%, 열기침투 4%, 문 2%입니다. 벽만 두껍다고 냉난방비를 줄일 수 없다. 기초와 바닥, 지붕과 창문 등 단열시공은 제쳐두고 벽만 두꺼운 집은 한 겨울 홀딱 벗고 두터운 웃옷만 입는 격. 구석 구석 철저히 단열을 해야 겨울철 따뜻하고 여름철 시원해진다. 철저한 단열 시공 개념이 과거 흙건축에서는 부족했다.
흙은 단순히 단열 성능만으로 보면 스티로폼이나 우레탄 폼 등 화학 단열재에 비해 떨어진다. 그러나 흙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고 볏짚, 조개나 굴껍질, 왕겨숯 등 천연 단열재로 단열시공을 하면 에너지 효율이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
시멘트 마감 방바닥과 흙 마감 방바닥의 열 효율을 비교해본 결과 흙 바닥일 경우 최고 11.6% 정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양의 연료로 난방을 할 때 벽체 온도는 최고 2.6도, 바닥 온도는 최고 4도.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흙이 열을 저장하는 축열성능이 높기 때문이다. 흙이 시멘트 보다 1.16배 발열전도율이 높고 난방 종료 후에도 시멘트 보다 10% 가량 늦게 식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뿐 아니라 흙은 시멘트 보다 내부 온도의 열평형을 효과적으로 조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최근의 개량된 생태건축 방식은 벽체를 두껍게 만든다. 담틀, 흙부대, 알매흙집, 거섶흙집, 흙벽돌 집 등은 벽체의 두께를 최소 40cm 이상 만든다. 이중심벽 방식에서는 왕겨숯이나 짚버무리 등을 벽체 안에 단열재로 채운다. 벽체 두께는 대략 30cm 가량이다. 볏짚단 건축은 두꺼운 볏짚단 자체를 벽체 겸 단열재로 사용한다. 볏짚압축 판재(일명 다다미 속판)는 그 자체가 스티로폼과 같은 단열재 겸 합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지붕 중천장 역시 왕겨숯이나 톱밥, 짚버무리 등으로 단열처리하고 바닥은 조개껍질이나 굴껍질, 볏짚단, 자갈 등을 단열재로 사용한다.
전통 한옥의 고질적인 문제인 벽체 틈새 문제는 조선 후기 북학파의 저작인 금화경독기 등에 소개된 바와 같이 한지해초풀이나 석회반죽채움 방식과 여기에 황마포 덧붙임, 목구조 요철, 액자틀 방식 등 그 해결책이 충분히 개발되어 보급되고 있다. 이렇게 개량된 틈새막음 방법과 자연 단열재 이용으로 더 이상 흙집은 추운 집이 아니라 겨울철 따뜻하고 여름철 시원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진에도 강한 생태건축물들
아이티, 칠레 등 전세계 곳곳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생태건축물은 과연 지진에 강할까. 흙집은 몇년이나 견고하게 버틸 수 있을까. 연구와 실증사례를 보면 의외로 놀랍다. 2천년이 넘은 만리장성의 상당 부분은 흙건축 방식의 일종이 담틀방식으로 지어졌다. 볏짚단으로 지은 스트로베일하우스는 지진이나 화재에 취약할 것처럼 느껴진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하중 시험결과(1999년-ASTM E72 인증자료집) 10평의 볏짚단벽체가 견딜 수 잇는 하중은 무려 25톤이나 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소방안전 테스트(1993-ASTM E119 인증자료집) 결과 압축볏짚단은 섭시 1012도의 고열로 2시간 가열했는데 전혀 불이 붙지 않았고 반대편 벽의 온도 상승은 5도 이하였다. 압축볏짚은 산소가 들어갈 공간이 없고 흙이나 석회로 미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흙부대집(earthbag house)는 국제건축사무국인 ICBO가 감독한 칼어스흙집학교의 실험결과 국제 건축기준 보다 200% 이상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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