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어로 "새끼거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오카리나는 흙으로 빚어서 초벌
구이로 만들어진 악기입니다.
오카리나의 기원은 기원전 3~4세기의 고대 문명사까지 거슬러 올라 가지만 지금과
같은 오카리나는 1860년경 이태리의 도나티(Donati)에 의해 만들어 졌고 더 좋은
소리를 내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개량이 거듭된 결과 오카리나의 아버지
라는 칭호를 받는 치사귀도(Chiesa Guido)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 되었습니다.
오카리나는 소박하고 따뜻 하면서도 깊이 있는 음색으로 이시대에 가장 순수한
악기로 우리 마음속에 기억될 것입니다.
♬ 유래
일반적으로 흙으로 빚어 구워만든 악기를 통칭하여 오카리나라고 부릅니다.
“오카리나” 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의 부드리오(Budrio) 지방에서기우세프 도나티
(Giuseppe Donati)가 만든 오리형의 모습에 의해서 생겨난 이름이지만 현재에는
오리형을 포함 도자기형 악기를 통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흙으로 구워 만든 악기는 수천년전부터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당시에는 지금의 형태가 아닌 한, 두음 정도를 내는
주술적인 성격을 갖는 악기였습니다.
고대 마야유적에서 발견된 형태를 보면 주로 거북이나 새 등 여러 동물을 표현한 것
이였습니다.
이렇게 중남미에서 발전이 되던 오카리나는 스페인등에 의해서 마야, 아즈텍,잉카
문명이 정복되어가면서 유럽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한 소리밖에 낼 수 없었던 악기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되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흙으로 빚어 만든 오카리나를 연주하던 아즈텍인들의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로마귀족의 제빵 기술자가 그 모양을 흉내낸 후, 장난감용으로 그의 빵 굽는 오븐에
서 구워냈고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장난감은 곧 큰 인기를 끌어 전 유럽의 제빵
기술자가 이런 맑은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만들어 시장에 팔아왔습니다.
이렇게 340년이 넘게 대중적인 장난감이 되었던 오카리나는 이탈리아의 부드리오에
살던 당시 17살의 음악가이자 제빵기술자였던 '기우세프 도나티'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가 지금과 같은 오카리나로 개량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역사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단지 몇개의 음밖에는 소리 낼 수 없었던 오카리나를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고 정확한 옥타브 음계를 갖는 오카리나로 만들어 낸 사람은
이탈리아의 부드리오(Budrio) 지방에 살던 기우세프 도나티(Giuseppe Donati)입니다.
그는 나중에는 Bologna, Milan 지방으로 옮기며 오카리나를 만들었습니다.
1870년에는 도나티의 견습공이자 Budrio Ocarina Ensemble의 전 멤버였던 Ercole과
Alberto Mezzetti가 파리로 옮겨서 오카리나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오카리나
는 파리(Paris)와 에딘버그(Edinburgh)의 공연회에서 주요한 상들을 많이 탔습니다.
나중에 Alberto는 요양을 위해 런던으로 자리를 옮겼고 Stafford에서 오카리나를
만들었으며 오카리나 교본을 펴내며 영국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알렸습니다.
1878년에 도나티는 Bologna로 이주를 했는데, 부드리오 근처의 'Fornace Silvani'
에서 Cesare Vicinelli라는 사람이 오카리나를 계속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는 제빵기술자의 아들로서, 그 자신도 제빵 기술자로서의 자질이 있었는데 이러한
그의 자질과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은 그를 휼륭한 오카리나 연주자,
제작자가 되게하였고 그는 주형을 만들어서 많은 양의 오카리나를 만들어 냈습니다.
Antonio Canella는 1878년 1940년까지 오카리나를 만들었는데, 그는 도타티 처럼
다양한 종류의 오카리나를 제작해서 하나의 오카리나 위에 또 하나의 오카리나가
있는 더블 오카리나(double ocarina)나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기 위한 금속 피스톤을
갖춘 오카리나 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하루에 100여개의 오카리나를 만들었으며, 해외에도 수출을 하였습니다.
Cesare Vicinelli는 1920년에 죽으면서 24년동안 그의 조수로서 일해온 귀도 치사
(Guido Chiesa)에게 그의 작업실과 집, 오카리나 제작 도구를 남겨줬는데, 이때가
귀도 치사는 36살로 정원사였는데 그의 스승이였던 Cesare Vicinelli는 그에게
오카리나 작업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귀도 치사는 남겨진 오카리나 작업도구와 창의성, 악기에 대한 정열로 부드
리오 작업실(Budrio workshop)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하루에 30~40개의
오카리나를 만들어서 해외에까지 팔 수가 있었습니다.
부드리오 지방에 살던 Chiesa와 동시대의 인물로 Cesare Vicinelli 밑에서 같이
조수로 있던 Emilio Cesari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Le Creti'라는 이름의
작업실을 부드리오 근처에 직접 차려서 Bologna로 이주하기 전인 1920에서 1927년
까지 오카리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1925년부터 1927년까지 'Gruppo Ocarinistico Budriese'라는 연주단을 구성
했으며 직접 지휘도 했습니다.
이때 그는 실력이 좋은 오카리나 연주자가 되어 있었는데 그는 이상하게도 대중
앞에서는 연주하지 않고 가족들과의 연주회에서만 연주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후에 S. Remo 지방으로 이사를 하여 그 도시에 있는 'Casino Orchestra' 라는
연주단에서 활동을 하다가 1940년에 다시 오카리나를 만들기 시작하여 이탈리아
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명성을 얻게되었습니다.
한편 1928년, 일본에서는 조각가였던 아케다(Aketa)가 오카리나를 만들기 시작
했으며, 2차세계대전 중에는 전쟁에 복무중이던 사람들이 베이클 라이트라는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만들어진 주형을 고안해 냈고, 특별히 고안된 군용 오카리나
교본을 만들기도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Sears Roebuck으로 부터 메일에
의해서 같은 오카리나가 팔렸습니다.
1963년에 'Gruppo Ocarinistico Budriese'의 멤버이기도 했던 Arrigo Mignani는
이미 은퇴한 Chiesa와 접촉을 해서 그의 회사와 기술을 사고자 했으나 당시 80세
이던 Chiesa는 집한채 값이 3백만리라였던 시절에 2천만 리라를 요구해서,
Cesari의 사용치 않던 도구들을 백만리라에 샀습니다.
1964년에 그는 자신의 힘으로 첫 오카리나 연주회를 갖었으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24년동안 오카리나를 만들었습니다
- 기본적인 악기 잡는 모습 - | |
앞모습 |
뒷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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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1 |
방법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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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일반적인 오리형 오카리나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앞면에 10개의 구멍과
뒷면에 2개 모두 12개의 구멍을 이용하여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뒤쪽의 가운데 구멍은 바람이 나오면서 소리가 나는 구멍입니다..
1번과 2번은 저음(낮은 라, 낮은 시) 연주시 사용하고 기본음(도~높은도) 연주에는
3번부터 10번까지 순서대로 사용됩니다. (단, 7번은 제외)
1번과 2번을 제외한 모든 구멍을 막으면 기본음인 '도'가 됩니다.
기본음 (도,레,미,파,솔,라,시,높은도)를 연주하려면 오른쪽(3번부터)에서부터 순서대로
손가락을 떼면서 연주를 하면 됩니다.
3번 구멍을 열면 '레', 4번 구멍을 추가로 열면 '미' 이런 식입니다.
다만 7번 구멍은 '높은 파' 연주에 사용되므로 기본음 연주시에는 구멍을 열면 안됩니다.
운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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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라 |
낮은 시 |
도 |
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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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
파 |
솔 |
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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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높은 도 |
높은 레 |
높은 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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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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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b(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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