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주스에 해독 성분 없다…채소·과일 주스일 뿐
[안종주의 건강사회] 우리 사회 새로운 유행병, 해독에 정신이 마비된 한국인
대부분의 사람들을 유행을 좆는다. 패션이나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성형도 이미 우리 사회의 대유행으로 자리 잡았다. 노래, 술 등도 유행을 탄다. 1970년대는 포크송과 통기타, 맥주가, 1980년대는 양주가, 2010년대에는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막걸리가 다시 등장해 사랑을 받고 있다. 1960~1980년대 유행했던 다방은 거의 사라지고 이젠 그 자리를 커피숍 또는 커피전문점이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하면서 도시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아파트가 재산 증식과 부의 상징이 되면서 불어 닥친 아파트 열풍은 이제 그 인기가 시들해졌다. 요즘에는 도시 근교나 농어촌과 산골에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것을 로망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새로운 유행 조짐을 틈타 최근에는 종편을 중심으로 텔레비전 방송이 번잡하고 화려한 도시를 등지고 산골에서 나 홀로 사는 이들을 앞 다퉈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나이가 지긋해야 수염을 길렀으나 요즘은 40·50대는 물론이고 20·30대 가운데서도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월이 흘러도 대중 곁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면서 사랑을 받는 것도 있다. 트로트와 소주가 대표적이다. 유행은 한때 스쳐가는 바람과 같다. 물론 한번 유행했던 것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복고 또는 재유행 등의 이름으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건강 비결이나 건강식품도 유행 또는 재유행의 흐름을 탄다. 최근 수십 년간 유행한 건강차, 다이어트식품, 강정식품 등을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1970·80년대는 쌍화차가 유행했다. 잘 먹지 못해 몸이 삐쩍 마르고 얼굴에는 기름기가 없어 피부가 탄력이 없던 시절에는 한약방에서 십전대보탕과 같은 보약을 지어 먹고 강정식품으로 개소주와 뱀탕을 찾았지만, 이제 이런 강정식품을 팔거나 다려주는 곳은 극히 일부만 살아남아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세월 따라 건강식품 유행 판도가 바뀌다
그 뒤 유행한 건강(기능)식품들을 살펴보면 1980·90년대에는 스쿠알렌, 스피루리나, 컴프리, 알로에, 멜라토닌, DHEA, 로열젤리 등이 사람들을 유혹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더는 건강식품 유행의 주역 노릇을 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조역을 담당하고 있다. 요즘 주역은 비타민과 오메가3, 유산균제제 등과 함께 아사이베리, 초코베리, 블루베리 등 온갖 베리 제품들이다. 과거에는 정력에 도움을 주고 영양 보충을 해주는 식품이 인기를 끌었다면 지금은 칼로리는 낮으면서도 살빼기에 도움을 주거나 각종 만성병에 걸린 사람이 질병을 치유하거나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을 주로 찾는다.
건강 비결과 관련해 가장 최근 유행하는 키워드는 해독이다. 그리고 해독에 도움을 준다는 이른바 해독식품, 그 가운데서도 해독주스가 가장 빠르고 크게 유행하고 있다. 책방의 건강 서적 코너에는 일본 요리사나 한국 의사, 한의사 등이 펴낸 해독 관련 책들을 눈에 띄게 진열해놓고 독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해독주스뿐만 아니라 온갖 해독○○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해독수(解毒水), 해독밥상, 해독팩, 해독법, 해독요리, 해독차는 물론이고 해독을 영어로 표현한 디톡스(Detox)란 이름이 들어간 책도 눈에 들어온다. 자칭 해독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이 방송 저 방송 출연하며 유명세를 날리고 급기야 자신의 이름을 딴 해독주스나 해독제품을 식품업체와 손잡고 시판해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의 해독열풍은 바람직한 것인가? 왜 느닷없이 해독 열풍이 불고 있는가. 과거 온갖 이름으로 유행하다 슬그머니 사라진 황제다이어트, 포도다이어트 등 살빼기 다이어트비법의 재림은 아닌가? 과연 해독주스는 그만한 돈을 주고 먹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정말 뛰어난 해독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해독주스 등 해독을 상품화해 팔고 있는 사람들은 "삶은 채소와 생과일을 갈아 만든 한 잔의 주스로 몸 안의 독소를 없앤다"고 선전한다. 또 '해독 채소·과일 주스'는 놀라운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부종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고 주스 속에 들어 있는 식물섬유가 몸속 독소를 깨끗하게 배출시켜 준다고 한다. 또 이 주스 속의 살아 있는 효소가 날씬한 몸을 만들어주고 주스에 가득 포함된 비타민, 미네랄로 여성은 피부미인으로 거듭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채소·과일 주스 속 피토케미컬(식물 속 화학물질)로 몸의 노화를 멈추게 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만병통치약이나 다를 바 없다. 선전대로라면 빚을 내서라도 사먹고 싶다. 과연 그럴까.
효소액에 효소 없고 해독주스에 해독 성분 없다
사실 해독주스 또는 해독식품이라고 하는 상품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별 것 아니다. 브로콜리오이, 당근, 토마토 등 친숙한 몇몇 채소와 바나나, 사과와 같이 우리가 좋아하고 일상생활에서 즐겨 먹는 과일을 삶아 함께 갈았거나 생으로 갈아 마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희귀 재료나 값비싼 재료, 특수한 성분을 함유한 재료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최근 1~2년 전부터 해독 열풍이 풀고 있는 것인가? 그 이유를 누가 속 시원히 파헤쳐준 적은 없다. 그래서 필자가 나름대로 그 속을 파헤쳐보았다. 상품을 많이 파는 방법,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방법 중 고전적인 수법은 겁을 주는 것이다. 당신의 몸에 독이 들어 있다거나 독이 가득 들어 온갖 질병에 걸린다고 하면 겁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최근 들어 각종 암, 당뇨, 고혈압, 대사증후군, 비만 등이 날이 갈수록 기세를 올리고 실제로 이런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질병을 지닌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 친척이나 친구, 이웃, 직장동료들까지도 몸 안에 쌓인 독 때문에 온갖 질병에 생긴다고 한다면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더더군다나 각종 방송에서 한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채널을 바꿔가며 사흘이 멀다 하고 이런 내용을 이야기해대니 몸 안의 독소 때문에 온갖 만성병과 난치병이 생긴다고 굳게 믿게 되는 것이다. 독은 몸 밖으로 빼내야만 한다고 알고 있기에 디톡스, 즉 해독은 어느 누구도 부인 못할, 생명과 건강을 유지해주는 진리가 되는 것이다.
해독 열풍이 불게 된 두 번째 까닭은 해독이란 이름 자체에 있다. 사실 해독다이어트든, 해독주스든. 해독차든, 해독밥상이든 그 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많이 먹어오던 것이다. 야채주스, 과일주스, 야채·과일 혼합주스에 지나지 않는다. 생으로 갈아 마시거나 삶아 갈아 마시는 것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보통주스에 지나지 않는다. 결코 특별한 주스가 아니다.
그런데 그 앞에 해독이란 이름을 붙이니 만병통치약과 같은 기적의 치료제로 둔갑해버렸다. 건강이라면 굼벵이도 먹고, 말벌 애벌레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고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세상이니 해독이란 말에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무협지를 보면 독수를 쓰는 악랄한 고수가 나오고 그가 펼친 독에 중독된 사람은 해독약을 얻기 위해 그가 시키는 대로 온갖 짓을 벌이지 않던가.
셋째, 우리 사회 최고 건강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의사, 한의사 등이 책이나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독자나 시청자들을 솔깃하게 만들 정도로 아주 솜씨 좋은 언변으로 줄기차게 해독을 말하면서 해독 열풍이 불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와 방송이 찰떡궁합이 되어 만들어낸 마구 쏟아내는 건강비결에 그 분야 문외한인 일반시민들로서는 판단을 무장해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넷째, 최근 들어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는 병이 속출하고 또 치료가 힘든 만성질환이 많이 생기자 현대의학이 아닌 자연의학 또는 자연요법에 기대는 사람이 점차 많이 생겨났다. 이런 가운데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학박사, 의과대학 교수 출신 등이 마치 새로운 비방을 만들어낸 것처럼 이야기하니 많은 사람들이 해독주스 신도들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섯째, 상품으로 파는 해독·해소주스는 과채음료나 과채가공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를 ○○에 효능 또는 효과 등 마치 건강기능식품이거나 의약품인 것처럼 오인하도록 하는 과대선전을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현혹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는 만약 이와 같은 과대·과장 선전이 있을 경우 즉시 제제해 주스를 약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해독이라는 말에 판단이 마비되는 사회는 건강사회가 아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복어독, 식중독, 뱀독, 벌침독과 자연성 맹독이나 고독성 농약, 청산가리 등 독극물과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들을 독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이런 독이 몸에 들어온 것을 밖으로 배출하거나 독성을 중화하는 약을 해독제나 해독약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근 해독 열풍이 불면서 해독의 독은 이런 독이나 독성물질이 아니라 몸에 해로운 성분이나 물질, 몸 상태 모두를 말하고 이를 완화해주거나 없애주는데 도움을 주는 것을 해독○○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야채·과일주스를 해독주스, 또는 피를 맑게 해준다는 청혈(淸血)주스란 이름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어불성설이다. 핏속 성분에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거나 지질 수치가 높은 등 비정상적인 경우 대개 나쁜 식습관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탄수화물과 지방 등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할 경우 각종 대사성 질환이나 만성질환, 암 등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것이 두려우면 올바른 식습관, 즉 골고루 식생활을 하고 영양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면 된다. 여기에는 물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적절한 양으로, 적절한 조리법으로 해먹는 것이 포함된다.
야채와 과일을 갈아 주스로 마시는 것은 잘 씹기 힘든 중증환자나 노약자 등에게는 권할 만하다. 하지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과 성인들은 적절히 씹는 것이 치아 건강과 두뇌 건강, 그리고 신체 건강 모두에 좋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리한 것, 특히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서는 드링크제가 유난히 많이 팔린다. 해독주스, 해소주스 등은 편리하게 마시는 것, 즉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교묘하게 이용한 상술로 볼 수 있다.
해독주스 등의 등장과 뜨거운 관심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효소 없는 효소식품·효소액이 떠올랐다. 산야초 등에다 설탕물을 넣은 것에 불과한 효소액이 몸 건강을 책임져주고 암 등 온갖 질병과 증상에 효능을 발휘해주는 명약으로 둔갑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는 분명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그러진 건강 열풍을 교묘하게 이용한 일종의 사기극이다.
죽염이 약이 아니라 소금에 불과하듯이 해독주스도 과일·야채주스와 과채가공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말 그대로 '해독'주스는 없다. 과일과 야채만 있을 뿐이다. 적절한 양의 과일과 야채를 적절한 방법으로 먹으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독이라는 이름에 국민의 판단력이 마비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사회가 아니다.
출처 : 한국 민간 의술 연구회
글쓴이 : 두레박./조상순/서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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