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구수준 강해…6월 정국에도 적지않은 파장
청와대 “교수 전체가 몇분인지 아느냐” 폄하
[하니뉴스 ] “민주주의 후퇴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인 학내 기류다”
지식인 사회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3일 서울대 교수 124명과 중앙대 교수 68명이 낸 시국선언은 이 대통령의 1년여에 걸친 국정 운영에 대한 공개 비판이자, 국정 기조를 전면 쇄신하라는 강력한 요구로 해석된다.
특히 이날의 교수 시국선언은 오는 10일 범민주세력이 개최하는 ‘6월항쟁 계승과 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가칭)를 앞두고 나온데다 앞으로 여러 대학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6월 정국’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날 성명에서 교수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뿐 아니라 용산 철거민 참사 및 화물연대 박종태씨의 죽음 등으로 나타난 민중 생존권 억압, 헌법에 보장된 사상·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 자유의 훼손, 검찰·경찰·국세청 등 권력기구의 정치적 사용 등 이명박 정부의 문제점들을 포괄적으로 지적했다.
정용욱 서울대 교수(국사학)는 이날 성명에 대해 “온 국민이 정치·사회적 위기를 해결하려고 할 때, 지식인이 집단적으로 모인 교수 사회는 이런 움직임에 힘을 보태왔다”며 “최근 심각한 민주주의 퇴보 상황을 보고, 지식인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해 같이 지혜를 모으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 시국선언은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결정적인 고비에 처했을 때 ‘국면 전환’의 기폭제가 돼왔다. 4·19 혁명이 진행되던 1960년 4월25일 전국대학교수단이 낸 시국선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수단은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거리행진에 나서, 결국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자유당 정권의 붕괴를 이끌어내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1986~87년 봇물처럼 터져나온 교수 시국선언은 87년 6월 민주항쟁과 6·29 선언으로 귀결됐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면서 서울대 교수 88명이 시국선언을 내놨고, 지난해 5월 촛불집회 때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전국교수노동조합 등과 연세대 교수 156명이 ‘촛불시위 폭력진압 중단’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성명서를 낸 적이 있다.
서울대, 중앙대에서 시작된 교수 시국선언은 연세대, 성균관대, 성공회대, 한신대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부·민교협 상임의장)는 “교수들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온 것 자체가 1987년 6월 이전으로 사회가 퇴보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현재 상황을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공개적으로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교수들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이달 들어 줄줄이 예정된 △‘6월항쟁 계승과 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10일) △효순이·미선이 추모제(13일)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행사(15일) △노동계 ‘하투’(하계투쟁) 등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현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심각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로서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는 “정부가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시국선언에 나선 서울대 교수가 전체 교수의 극히 일부라는 취지의 말을 하는 등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이 관계자는 이날 교수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울대 교수 전체가 몇 분인지 아느냐. 1700명 되는 것을 아는데”라고 말했다.
홍석재 김민경 기자 forchi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