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언제까지 李정부를 인내할까
소득, 물가, 빈부격차의 3중고
‘이명박 공화국’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과 같은 우익 인사들조차
임기가 3년도 더 남은 이 대통령이 곧 레임덕에 빠지고 보수의 궤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
고를 하는 등 위기의식은 전례 없이 심각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역대 대선에서 가장 큰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경제 대통령'에
대한 실망은 사상최저치의 지지율로 돌변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파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진짜 실업률은 3%가 아니라 15%
실업자는 계속 늘고 있다. 정부의 실업률 통계는 실업자의 상당수를 비경제활동인구로 빼버
리는 방법으로 현실을 곧게 반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제외되는 '취업준비자' '그냥
쉬었음' '18시간 미만'의 인구를 포함하는, 미국 노동통계청(BLS)의 유사실업 기준 대로 세
어보면 실업자는 436만 5천명이나 된다. 실업률은 3% 후반이 아니라 15.88%까지 올라갔
다.(3월 고용동향 기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소 추산)
청년층의 실업률은 임계치에 다다랐다. 청년실업은 공식통계로도 전체 실업률의 두 배가 넘
는데, 실업률 통계에서 취업준비자들을 모두 비경제활동인구로 제외한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소위 명문대로 일컬어지는 대학들의 경우에도 '논문스톱'으로 졸업을 늦추는 학생들이 한
과에만 10여명에 이른다. 초중고 때의 사교육비는 물론이고 연간 천만원 대의 등록금을 내
고 공부해도 갈 데가 없다고 하니, 4년제 졸업이 곧 안정된 직장을 보장했던 10년 전과 비
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97년 외환위기 때는 실업자들이 너도나도 창업에 나서면서 대량실업을 완충하는 효과가 있
었다. 지금은 임금노동자는 물론이고 자영업자의 붕괴도 진행되고 있다. 2003년부터 2006
년까지 창업한 자영업자 가운데 85%가 폐업했다는 지난해 9월 중소기업청의 조사에서 보
듯이,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OECD 가운데 1위로 이미 한계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상당수의 자영업자들은 반실업 상태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4월
에만도 자영업자 수는 전년동기대비 26만 9천명(4.5%)이나 감소해, 자영업 감소세가 시작
된 2006년 5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벌이 줄고, 물가 치솟고, 빈부격차 커지고
벌이는 줄고, 물가는 치솟고, 빈부격차는 커지고 있다. 1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7%가 줄었다. 소득은 3분기 연속 감소 중이다. 총저축률은 2001년
이후 최악으로, 국민들은 어렵게 모아 둔 쌈짓돈을 꺼내 쓰고 있다.
정부 주장과 달리 실생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한국의 4월 식품 부문 소비자물가지수
는 전년 대비 12.2%나 올랐다. 이는 OECD 평균 보다 4배나 높은 것으로, 국가부도에 처한
아이슬란드에 이어 2번째다.
빈부격차는 IMF관리체제 이후 최대로 벌어졌다. 1분기 하위 20%의 월 소득은 85만 6천원
으로 1년 전보다 5.1% 줄었고, 상위 20%의 소득은 742만 5천원으로 1.1% 증가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8.18배로 늘었다. 지니계수는 지난해 0.325로 '상당히 불평등한 단계'에 들어
섰는데, 올해는 더 악화될 전망이다.
빈부격차가 커지는 가장 큰 원인은 9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진행된 비정규직화 때문이다.
현재 비정규직의 과거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정규직과 대비해 월평균 임금총액은 50.3%에
불과하다. 소득격차보다 자산격차가 4배 가량 크고 실질임금 보다 자산가격 상승이 훨씬 빠
르니, 임금근로자가 소득을 모아 자산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난 셈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용자들이 비정규직을 더 많이, 더 자유롭게 오래(2년->4년) 쓸 수 있도
록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법은 사용자가 실수로 2년이 넘게 고용하면 쉽사리 해고하
지 못하게 '무기계약'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부의 실탄이 동나고 있다
'하반기에는 좀 나아질까?' 기대를 해봐도 앞날이 순탄치가 않다. 경제위기의 진폭에 대해서
는 의견들이 엇갈리지만, 급격한 경기회복은 없다는 게 일치된 견해다. 여전히 세계경제는
불안정성이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장기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경제
의 기초체력은 이미 바닥이다.
문제는 큰 변동 없이 현재의 상태에서 침체가 장기화되는 경우에도 서민경제에 대한 타격이
적지 않고, 위기가 재발할 경우 이를 방어할 정책수단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급격한 내수 위축을 한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하는데, 서민들
의 소득감소와 실업난이 내수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한국은 금융과 실물경제 양 쪽에서 일단 위기를 지연
시키는 정책을 취해왔다. 그 한가지로 고용 문제에 있어서는, 공공부문을 필두로 안정된 일
자리를 줄이면서 저임금의 한시적인 인턴채용을 늘렸다. 정부가 만든 일자리들은 채용기간
이 최대 6개월로, 이 같은 이중적인 정책행보는 하반기에 실업자들을 쏟아내지 않을 수 없다.
위기 대응을 위한 실탄도 거의 떨어져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지속된 부자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재정적자는 위험수위인 GDP대비 5%를 넘었고, 국가채무는 43.5%(IMF의 2001 GFS
기준)에 이른다. 국가채무의 경우 그 기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일각에서는 이미 2007년말
기준으로 이미 국가채무가 GDP 대비 76.3%에 달한다는 경고도 나온다. 지난 4월 OECD의
수정보고서는 2008∼2010년의 기간에 한국이 미국(5.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재정적자
(4.9%)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국가채무 증가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MB정부 들어서 2년 만에 국
가채무가 68조원 증가했고 1인당 국가채무는 136만원 늘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용섭 의원은 정부 기조가 변하지 않을 경우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2012년에 국가채무는
GDP 대비 50%를 상회하고, 이자비용도 일반회계 대비 10%를 상회할 것"이라며 "재정건전
성이 본질적으로 훼손되면 앞으로 밀려올 대내외 충격에 재정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고 경고했다.
또 한번의 마이웨이, 하지만..
현 정부의 계속되는 '부자감세'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세수는 메꿔야 하는 법. 최근 부가가
치세 인상을 검토하는 정부의 연구용역보고서가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기획재정부는
정치권 일각의 '인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조세저항이 적은 간접세 인상의 유
혹을 떨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친기업정부' '1%를 위한 부자정부'로 찍혀있는 상황
에서, 서민층을 타겟으로 하는 세금인상이 이루어질 경우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돌아보면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엄습한 경제위기는 국민의 반감을 잠시 마비시키는 효
과를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2의 IMF사태'에 대한 우려가 다소 진정되면서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더욱 냉정하고 비판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해 광우병 촛불시위로 표출된 국민들의 불만은 상대적으로 종속적 한미관계와 국민 여
론에 눈과 귀를 막은 MB정부의 행태에 꽂혀있었다. 다시 1년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촉발된 현재의 국면은 현 정부에 대한 전면적 부정에 가깝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일 "국면전환용 인사는 구시대의 일"이라며 또 한번 마이웨이를 선
언했다. 조기 레임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국민이 언제까지 이 정부를 인
내해 줄 지 두고 볼 일이다.
매일노동뉴스 / 문형구 기자 mun@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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