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과 ‘타협말라’는 대통령 민간기업도 정부 따라하기로 들썩…노동계 “내년 상반기에 일전불사” 기로에 선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민간기업도 정부 따라하기로 들썩 … 노동계 “내년 상반기에 일전불사”
요즘 공공부문 노동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공기업노조들은 “이러다 정말 단체행동권마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고, 공무원·교원노조는 “노조결성조차 인정되 지 않았던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요동을 치고 있다. 정부의 공공부문 노동계 옥 죄기는 지난 1일 절정에 달했다. 전국철도노조와 전국공무원노조에 대한 압수수색이 동시에 실시됐기 때문이다. 10개월 가까이 단체협약 해지 통보로 갈등을 빚어오다 잠정합의에 이른 한국노동연구원은 난데없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임태희 노동부장관과 임채민 지식경제부 1차 관·허용석 관세청장은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파업 6일째로 접어든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 정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은 예고없이 한국철도공사를 방문해 “안정된 일자 리를 보장받고도 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MB의 ‘머슴론’,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집어삼키다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이처럼 몸살을 앓는 배경에는 ‘공직자 머슴론’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머슴’이라는 지론을 펼쳐 왔 다. 공공기관 종사자 역시 머슴론에서 피해갈 수 없다. 이 대통령은 4월18일 ‘공공기관 선 진화 추진점검 워크숍’에서 “길거리에 나오고 반개혁적인 벽보를 붙이는 공직자는 자격이 없다”며 공기업노조를 공격했다.
철도파업을 앞두고 ‘공기업노조와 적당히 타협 말라’는 주문 역시 일관된 맥락이다. 이 대통 령 입장에서 보면 머슴이 노동기본권을 주장하며 ‘떼’를 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가장 먼저 단체협약이 휴지 조각이 됐다.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을 필두로 지역 교육청들은 교원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올 2월 한국노동연구원을 시작으로 9곳 의 정부출연연구기관 단협이 해지됐다. 11월부터 발전·가스·철도노조가 잇따라 단협 해지 통보를 받았다.
정부는 단체협상 테이블도 걷어찼다. 10월 말 행정안전부는 공무원노조와의 단체교섭을 백 지화했다. 전국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한 후 협상자격을 상실했다는 이유를 댔다. 100인 이상 공공부문 사업장 275개 가운데 지난달 말까지 임금협상을 타결한 곳은 101개 로, 타결률이 36.7%에 불과하다. 노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임단협 개정안을 요구하고, 협상이 결렬되면 단협해지 수순을 밟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단결권마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24일 노동부는 전국공무원노조의 노조설립신고서를 다 시 반려했다. 공무원노조는 “정부가 조합원 가입 대상과 규약 제정·대의원 선출 절차를 트 집 잡는 것은 노조 설립 자체를 막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현행법상 신고제인 노조 설립을 사실상 허가제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 꼬일 때마다 공공부문 노조 희생양 만들어
이명박 정부는 공공부문 노조를 국정돌파의 발판으로 삼아 왔다. 지난해 미쇠고기 수입파문 은 촛불시위를 낳았고, 국정지지도는 끝없이 추락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따르면 그해 7월29일 18.5% 수준이던 국정지지율은 8월11일 공기업 선진화방안이 발표된 직후부터 상 승했다. 국정지지율은 8월12일 23.4%에서 같은달 말 30%에 육박했다.
올해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각계에서 시국선언이 잇따르자 공무원·교원에 대한 징계의 칼을 휘둘렀다. 노조사무실·금융계좌·이메일 압수수색, 핸드폰 위치추적, 고발, 파면 과 해임 등 전교조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최고조에 달한 9월 국정지지율은 최고 63.5%(한 국사회여론연구소)에 달했다.
또 세종시와 4대강 문제로 국정 전반이 궁지에 몰린 지난달 말 이명박 대통령은 철도파업 의 강경대응을 진두지휘했다. 철도가 아무리 국민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해도 일개 사 업장 파업에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철도노조가 업무복귀를 선언한 이후 40% 초반까지 떨어졌던 국정지지도는 상승국면을 맞이하면서 50%(동서리서치)를 넘었다.
물론 대통령 국정지지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가운데 노사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 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공공 기관 종사자의 범죄화’를 통해 사회세력들이 서로를 할퀴고 경쟁하게끔 만든다”며 “자산양 극화와 비정규직 확대로 국민 다수의 삶이 피폐해져 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전략은 공공기관 노동자에 대한 증오와 질투를 유발해 확고한 권력관계를 유지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민들은 공기업 선진화정책이나 일방적인 ‘노조 때리기’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한국사 회여론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차 공기업 선진화방안 발표 직후 여론조사에서 ‘지지한 다’는 의견은 34.9%로 조사됐다. 공기업 선진화방안에 반대한다(41.5%)는 응답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10일 연구소가 발표한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노동정책 이 어느 쪽을 대변하고 있다고 보는지에 대해 ‘기업’이라는 응답이 58.8%로, 노동자 (15.6%)라는 응답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정부가 사용자편이라고 평가 한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 “뭉쳐야 산다”
올해 공공부문 노동계는 공통적으로 노동기본권 후퇴와 함께 ‘불법 낙인’으로 수난을 겪어 야 했다. 반면 민간부문은 경제위기로 인한 구조조정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쌍용차가 대표 적인 사례다. 정부는 민간부문 노사관계에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쌍용차 사태에서도 협 상중재보다 경찰력 투입을 통한 농성 해산에만 골몰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노동기본권 흔들기는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과 복무규정 개정, 발전· 가스·철도노조의 공동파업을 겪으면서 고조됐지만 전체 노동계 차원의 대응은 미력했다. 복 수노조·전임자 임금 문제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 탓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초부터 공공부 문 노사갈등은 전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철도파업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있는데다 발전·가 스노조도 무단협 사태를 막으려면 5월 이전에 어떻게든 단협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 획재정부가 1월에 발표할 것으로 보이는 공공기관 연봉제 표준모델안은 공공기관노조들의 반발을 부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6월에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교원노조 의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과 관련해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 아 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대통령이 최근 들어 고위공직자 부패 척결을 부쩍 강조하는 것 도 비슷한 맥락이다.
노동계는 이에 따라 지방선거 이전까지 공공부문 노조에 대한 정부의 강경몰이가 계속될 것 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공공기관노조들이 상급단체를 불문하고 연대투쟁에 나섰다면 내년에는 공기업·공무원· 교원노조가 한데 뭉칠 것으로 보인다. 공공운수연맹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는 정부의 공공 부문 노사관계 재편의 최종판이 될 수 있다”며 “향후 공공기관 노동운동의 명운이 달렸다고 과언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공무원·교원노조도 마찬가지다. 엄민용 전교조 대변인은 “공무원노조 설립 반려 조치는 곧 교원노조의 위기이며, 공공기관노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올해 정부가 노조활 동을 무력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내년에는 공공부문 노조를 원천적으로 부정할 가능성 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열흘 넘게 공동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는 내년 공기업노조까지 모여 사활을 건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민간부문 역시 올 한해 ‘나쁜 사용자’의 전형을 보인 정부를 주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사관계 불안요인은 더욱 가 중될 것으로 보인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단협해지 통보 민주노총 “내년 상반기 법 개정에 총력”
이명박 정부의 ‘노사관계 최대 히트상품’이 된 단체협약 해지 통보가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부문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금속노조 사업장에서만 이달 현재 9개 사업장의 단협이 해 지됐고, 4개 사업장이 단협해지 통보를 받은 상태다. 금속노조는 “2006년에는 아예 없었고, 2007년에도 단 한 곳에 불과했던 단협 해지 사업장이 지난해 6개로 증가했다”며 내년에는 줄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단협 해지 통보는 96~97년 정리해고 법제화와 함께 도입됐다. 당시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 동관계조정법(노조법) 32조는 단협 유효기간을 2년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단협 갱신에 실 패했을 경우 효력만료일로부터 3개월간은 기존 협약의 효력을 유지하도록 했다. 다만 노사 가 ‘새로운 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기존 협약의 효력이 지속된다’는 별도 약정을 했을 경우 이에 따르되, 당사자 일방의 통보에 의해 단협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교섭 장기화를 예 방하고 변동하는 사회·경제적 여건을 단협에 적용토록 하기 위한 취지였다.
당시 민주노총은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용자가 별도 약정에도 불구하고 기 존 단협 효력 유지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로 봤다.(97년 민주노총 ‘개정노동법 해설’참조) 물론 일방에 의한 단협 해지 통보로 무단협 상태에 이르면 노동자 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표명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전환하는 사업장들이 증가하면서 기존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는 이 조 항이 반드시 ‘독소’는 아니라는 해석도 존재했다.
32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은 2002년부터다. 그해 두산중공업은 단협 해지를 통고해 극심한 노사 대립을 불러일으켰고, 이 때문에 노조 대의원이었던 배달호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주노총은 2003년 일방에 의한 단협해지 통보 조항 삭제를 요구하는 입법청원을 제출했으 나 법 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2006년 노사관계 선진화로드맵 논의가 한창일 당시에도 32 조가 논란이 됐지만 단협 해지 조항은 유효기간 3년 연장 논의에 가려졌다.
권두섭 변호사는 “단협해지 통보 조항은 한국철도공사 사례에서 보여지 듯 수십 년간 노사 가 쌓아올린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효과가 있다”며 “노사관계를 원시상태로 되돌리는 이 조항은 반드시 삭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협 해지 통보가 법전에 명문화돼 있는 나 라는 일본과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민주노총은 내년 상반기 단협해지 통보 조항 삭제를 위 한 입법투쟁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 김미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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