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수업 들으라고요?" 대학생 400여명 거리행진
[현장] 경희대·서울대서 청와대 향해... "수사권·기소권 보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
▲ '유가족의 요구를 수용하는 세월호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이 25일 오후 서울대와 경희대를 각각 출발해 도보행진으로 광화문 단식 농성장에 도착 하고 있다. | |
ⓒ 이희훈 |
[기사 보강 : 25일 오후 10시 20분]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병원으로 후송되고,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이제 곧 개강이 다가오지만 이런 시국에 가만히 수업을 듣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던 약속을 이제는 지켜야 할 때입니다."
세월호 관련 '침묵 시위' 제안자로 알려진 경희대 용혜인 학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5일 오후 3시, 서울 시내 대학생 400여 명이 "유민아빠를 살려내자", "수사권 기소권 보장된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서울 곳곳에서 도보행진을 진행했다. 각 대학 총학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성명을 낸 적은 있었지만, 행진 등으로 직접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와, 20여 개 대학생 단체로 구성된 '세월호 대학생 대표자 연석회의' 공동주최로 진행된 이날 행진은 오후 3시 서울대 정문과 경희대 정문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경희대에서는 경희대·이화여대·동국대 등 각 학교 대학생 200여 명과 교수 및 일반 시민 50여 명이 함께 했고, 서울대에서도 학생·교수 등 100여 명이 동참했다.
▲ 25일 오후 3시, 서울 시내 대학생 400여명이 "유민아빠를 살려내자", "수사권 기소권 보장된 특별법을 제정하라"며 서울 곳곳에서 도보행진을 진행했다. 각 대학 총학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성명을 낸 적은 있었지만, 행진 등으로 직접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
ⓒ 유성애 |
인원은 행진을 하면서 동참한 시민들로 조금씩 불어났다. 이들은 각 학교에서 동시에 출발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외치며 거리행진을 한 뒤 광화문으로 향했다. 학생들은 특히 "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이제는 대통령이 책임져라", "청와대는 유가족 의견을 수용한 특별법 제정을 결단하라"고 쓰인 노란 플랭카드를 들고 걸었다.
경희대에서 출발한 학생들은 오후 6시 30분께, 서울대 출발 학생들은 오후 6시 50분께 세월호 유족들이 있는 광화문 농성장에 도착했다. 광화문에 먼저 도착해있던 학생들과 시민들이 "수고하셨다"고 박수를 치며 나중에 도착한 학생들을 환영했다.
단원고 2학년 4반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 등 세월호 유가족 10여 명도 광화문 광장에서 학생들을 맞이하며 "국가는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지만 대신 여러분께서 이렇게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여러분은 제발 다치지 말라"고 부탁했다.
경찰 수백명에 싸인 학생들 "유가족 응원하러 왔다"... 유가족 "고맙습니다"
이후 청와대 측에 특별법 제정 촉구 탄원서를 전달하기 위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삼삼오오 걸어온 학생들은 종로구 청운동 일대에 출동한 경찰 500여 명에 가로 막혔다. 경찰들은 "시민 통행을 막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해산 명령을 내렸다.
오후 9시께, 유족들이 있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쪽으로 가려다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학생 30여 명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우린 행진을 한 적도 없고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며 "저희는 그저 유가족들을 응원하러 왔을 뿐이다, 오히려 시민들 통행을 막고 있는 경찰들이 불법 아니냐"고 항의했다.
특별법 제정에 대한 대통령과 청와대 측의 결단을 촉구하며 주민센터 앞에서 노숙 중이던 유족들은 직접 나서서 대학생들을 응원했다. 세월호 참사로 단원고 2학년 7반 이민우군을 잃은 아버지 이종철씨는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학생들이 불법집회도 아니고 우리들을 응원하러 왔다는데 경찰들이 왜 막는지 모르겠다"며 "경찰이 먼저 무리하게 막고 채증하지 않았느냐, 그건 잘못이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단원고 2학년 7반 고 오영석군의 아버지 오병환씨는 학생들 틈으로 들어가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외쳤다. 오씨는 "우리 안전한 사회에서 같이 삽시다, 그러려면 (학생들이) 다치면 안 돼"라고 부탁했다. 고 최성호군 아버지 최경덕씨도 경찰들 어깨 너머로 "학생들 다치면 안 돼요, (경찰들은) 학생 해치지 마세요"라며 말을 건넸다. 학생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주민센터 앞에 있던 유가족들은 걸어서 5분 거리(약 30m)에 있던 학생들에게 들리도록 "학생들 고맙습니다"라고 목소리 높여 외쳤다. 40여 분 동안 경찰과 대치한 끝에 학생대표로 유족들과 5분간 짧게 만난 남녀 대학생 2명은 "저희가 끝까지 함께 하겠다"며 "8월 말까지 특별법 제정이 안 되면 9월에 대규모 행진을 할 예정이니 힘내시라"고 응원했다.
학생들은 오후 10시께 자진해산했다. 이후 유족들과 만난 이경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단식이 40일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실천과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 정권은 국민들 말을 들을 의지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학생들은) 앞으로도 계속 행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들은 청와대 측에 전달하지 못한 특별법 제정 촉구 탄원서를 오는 26일 다시 한번 전달할 예정이다.
학생들 "우리도 곧 사회인 될 것... 제2 세월호 참사 피해야"
앞서 행진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학생·동문 일동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가 길을 나서는 이유는 40일 넘게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 '유가족의 요구를 수용하는 세월호특별법'제정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이 25일 오후 서울대와 경희대를 각각 출발해 도보행진으로 광화문 단식 농성장에 도착 하고 있다. | |
ⓒ 이희훈 |
행진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학생·동문 일동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가 길을 나서는 이유는 40일 넘게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귀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들은 "세월호 사건은 교통사고가 결코 아니다, 벌어지지 말았어야 할 국가적 재난"이라며 "제2, 제3의 참사를 피하기 위해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희대에서 행진하는 학생들도 같은 뜻이었다. 대학 새내기로 사회적 행동에 처음 참여했다는 서은지(20, 이화여대 14학번)씨는 "유족들은 단식까지 하며 진상을 알고 싶어하는데, 시간만 낭비하고 특별법 제정을 미루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 참여했다"며 "일부 사람들이 유족 사생활 문제 등을 꺼내며 본질을 흐리는데, 근본적으로 법이 필요한 이유를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희대 교수로서 "학생들을 응원하고, 주류 언론에서는 말하지 않는 진실을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 행진에 동참했다는 존 에퍼제시(45, 경희대 영어학부 조교수)씨는 "한국 학생들의 행진은 미국에 비해 매우 평화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도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할 말이 있을 수 있고, 그 방법으로 이런 행진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응원을 보냈다.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한 모범택시 기사는 "너희들 때문에 길을 막는 게 말이 되냐"며 "너희들만 국민이냐"고 화를 냈다.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도 "너희들 빨갱이 아니냐"며 "학생이면 공부나 할 것이지 뭘 아느냐"고 소리치고 지나가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서울 성북구 안암동을 지나던 대학생 조아무개(22, 서경대)씨는 "학생의 본분이 공부인 것은 맞지만, 우리도 어른이 돼 사회인이 될 것이니까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본다"며 "저와 같은 또래 학생들이 하는 것을 보니 좀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행진을 지켜보던 용두동 주민 유재관(44)씨도 "시민들을 위해 학생들이 대신 나서주는 것 같아서 고맙다"며 응원을 보냈다. 아들 손을 잡고 지나던 한 아주머니는 "학생들 멋있다, 힘내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http://omn.kr/9z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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