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아줌마들의 '무한도전'…"도시에서 농사 짓자"
'연두영농 조합법인'. 담도 없는 마당으로 들어서면 떡하니 기대서있는 나무현판이 보인다. 허물어진 시멘트 마당의 갈라진 틈으로 노란색 갓꽃이 한들거리고 애기똥풀꽃이 얌전히 피어있다. 3월 말에 이사한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연두농장의 새 사무실은 뭔가 충만한 기운이 느껴진다.
시흥 전역에 농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변현단 대표가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몇 년 간의 농사로 단련되어서인지 변 대표는 정말 튼튼하고 씩씩하게 보인다. 그가 집을 한 바퀴 빙 돌아 보여주더니 설명한다.
"이 집도 그렇고 저희 농장 밭고 그렇고 거의 그냥 무료로 임대받은 것이에요. 이 집 그동안 열심히 손을 봤는데 어때요? 너무 좋지요? 만약 우리가 여기 안 들어왔으면 이 집이고 뭐고 다 공장이 벌써 들어섰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연두농장 사무실만 빼놓고 옆집 앞집 할 것 없이 공장 건물이다.
"시흥 땅값이 1평(3.3제곱미터)당 100만 원인데요. 농사는 지으면 망하니 주로 공장 임대 사업을 하지요. 우리가 농사짓는 데서는 1평당 1만 원 정도 농작물이 생산된다고 보면 되지요."
변 대표가 예사로 이야기한다. 연두농장은 사람들이 아까워하는 나머지 99만 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농사운동을 하는데서 찾으려한다.
"주말농장에서 주로 텃밭 분양을 하고 있어요. 다섯 평에 연간 7만5000원에서 10만 원 정도를 받고 또 농사짓는 교육도 하고 그러지요."
농사운동가 변현단 씨, 그는 행복하다. 땅이 경작지로 바뀌어나가는 모습, 사람들이 경작을 좋아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희망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활공동체 '연두농장'운영을 시작으로 시흥 전역 아니 전국에 농사운동을 시작한 변현단 대표는 사실 농사와는 별 상관없이 살던 사람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을 했지요. 그때 가슴이 꽉 막혀 있었어요. 배낭 메고 여행하면서 환경,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인터넷 신문 편집장, 정당활동, 팔도여행, 세계여행을 하다가 그가 터를 잡고 앉기로 작정한 것은 농사 때문이었다. 세상의 순환체계에 대한 의문을 가지다가 순환의 키워드를 찾은 것이었다. 그게 바로 농사의 '농'. 경북 어느 지역에서 막 밭터를 잡고 있는 그에게 연락이 갔다. 경기도 시흥의 작은 자리 자활영농사업단을 좀 맡아달라고. 그래서 시흥으로 왔다. '농촌 속으로!'가 아니라 '도시 속으로!'였다.
그는 '농'의 키워드로 도시빈민과 함께 하기고 마음먹었다. 농사운동, 농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때가 2005년도였다.
"10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모여 있었지요. 그중에 9명이 여성이었는데 다들 꽃 따는 일을 하러 오는 줄 알고 있더라고요."
화훼 사업을 하는 줄 알고 자활사업단에 모인 왕초보 여성 농사꾼들을 데리고 그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사에 대해 뭘 모르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했다. 농사 팀장으로서 농사를 가르쳐야 했으니 어깨가 참 무거웠을 것이다. 그래도 가장 쉬운 일이 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물론 힘은 많이 들었지만. 그러나 가장 힘든 일은 팀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그들을 단순한 일꾼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그냥 일만 하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경영을 배우고 다 같이 생산기획자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활은 없는 것이지요."
처음에 그냥 꽃이나 꺾으면 되는 일이려니 하고 왔던 자활사업단 아주머니들은 아주 힘들어했다. 그냥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똥거름을 만들어야한다고 고집피우는 팀장, 쉬운 길 다 마다하고 어려운 길만 찾아가는 팀장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머니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살맛나는 나날이 되었다. 연두농장의 농사일은 다른 일과 참 달랐기 때문이었다.
변 대표는 연두농장의 모든 농사법을 유기 농업으로 고집한다. 농약을 치지 않거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비닐일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농사기구도 호미와 삽 곡괭이 그런 것으로만 한다. 경운기 한 대 달랑 필요할 때 동원할 뿐이다.
"유기 농업 인증을 목표로 한다거나, 건강한 먹을거리로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을 공급한다, 그런 거 아니었지요. 우리 삶을 알기 위해서지요. 유기농이 우리 삶의 철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다 내 손으로 의식주가 해결되었는데 지금은 농사를 지어도 그게 진정한 내 것이 되지 않잖아요. 유기 농업으로 농사를 지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정말이에요."
영농사업으로 자활사업단을 꾸리는 동안 변 대표는 온갖 실험을 다해보았다.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나라에서 돈을 대어주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완전한 유기 농업,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볼 기회가 또 오겠느냐는 것이었다. 뙤약볕에서 풀을 베다가도 꼭 풀을 베어야 농사가 되나? 풀을 그대로 둔 채 농사를 지어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도 해봤다. 돈은 안 벌어도 된다, 우리 쫄딱 망해도 좋다, 이 때 안해 보면 우리가 언제 이렇게 좋은 농법으로 농사훈련을 지어볼 수 있겠느냐고 고집을 피웠다.
다행히 사업단 팀원들은 변 대표를 믿어주었다. 손이 부르트도록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부엽토를 날라 오고 고추밭에서 벌레를 잡아냈다. 거기다가 변 대표가 검박하게 살자, 소비를 줄이자고 노래를 했기 때문에 팀원들은 휴대전화를 마련해도 김치냉장고를 들여 놓을 때도 눈치를 봐야했다. 하지만 변 대표와 함께 농사를 짓는 동안 조건부 수급자들, 생활보호대상자들이었던 그들이 당당하게 변화해갔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도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도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고추포기처럼 그들도 푸르게 살아났다.
자활영농사업단 연두농장으로 시작하여 연두 영농조합법인이 되었다. 이제는 자립했다. 올해부터 자활공동체로 시작했다. 정부로부터 인건비 지원을 받지 않는다. 운영비는 그동안 모아둔 것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실업극복시민연대와 컨소시엄해서 사회적 일자리 지원을 받았다. 사업 내용은 당연히 농사다. 현재 운영하는 농장은 4개. 면적은 전부 합하면 6500평 정도 된다(땅주인이라는 말이 아니다. 경작만 할뿐이다. 오해 없으시길. 사람들은 땅 이야기만 나오면 부동산으로 연결하려고 한다.)
그러니 충분한 수입이 될 리가 없다. 변 대표는 농사로 돈을 벌자는 생각이라면 농사하지말자고 한다.
불편함이 만족스러울 때 농사를 짓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비를 줄이고 농사에 의존해서 의식주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분명 매우 불편한 생활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결국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자활은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돈을 많이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변 대표의 지론이다.
변 대표의 농사운동에는 농사교육 바람이 들어가 있다. 대상은 유치원 아이들에서 고등학교 학생(고3도 들어가 있다), 가족 등 지역주민 전부다.
그는 아이들이 땅을 만져보고 보이는 반응을 '경이로움'이라고 찬탄한다.
"유치원 아이들 앞에서 감자를 들고 이게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는 사람? 했더니 전부 '슈퍼에서요!'하더군요. 땅 한번 만져 볼까 했더니 망설이던 아이들이 감자 싹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고 나더니 농장에 오는 시간만 기다려진다고 해요. 닭이 알을 낳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은 생명의 순환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굳이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알아요."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특별활동시간으로 농사짓기 반에 들어와 일한다. 20명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학원에 가야하는 아이들이, 놀토에도 밭에 와서 일한다는 것이다. 그만하고 집으로 가라고 해도 재미있다고 하며 조금만 더 하자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이다(그중에는 학원가기 싫어서 그런 애도 있다고 변 대표가 덧붙인다). 농사일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을 변 대표가 하는 것 같다.
지금 연두농장의 텃밭회원이 100명이 넘는다.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한 이들 중에서 70%가 올해 다시 분양받아 농사를 짓는다. 회원들은 주말마다 만나 어느새 정다운 밭이웃이 되었다.
변 대표는 주말 오평텃밭 회원들한테 밭에서 돌멩이 거둬내는 일부터 하는 것을 보여준다. 농사짓기는 낭만적이거나 전원적인 감상으로 짓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어서이다.
"우리가 옆에서 농사짓는 방법을 보여주면 그게 바로 교육이 되는 것이지요. 퇴비 만들기 경우에는 한방찌꺼기를 수거해서 발효시키는데, 처음에는 우리가 만든 것을 팔았는데 이제 안 팔아요! 다들 퇴비를 만들어 볼 생각을 전혀 안하니까요! 직접 해보시라고 했어요. 두 번 째 농사부터는 퇴비 안판다고, 오줌똥 다 모아서 직접 만들라고 했지요!"
연두농장에서는 유기농으로 자란 온갖 채소가 나온다. 감자도 아주 인기가 높다. 그런데 변내표는 자기들 채소가 팔려나가지 않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즉, 모든 소비자가 생산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텃밭회원들이 그전에는 소비자였는데 이제는 생산자가 되었잖아요. 우리 운동이 성공한 겁니다! 시흥지역이 생태도시가 되는 것. 우리기 더 이상 채소를 팔 필요가 없고, 우리 연두농장이 필요 없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텃밭 농사가 이웃에게 전해지고 전달된다면 그게 바로 순환이라는 말이다. 그때가 되면 변 대표는 재빨리 보따리를 싸들고 전부터 꿈꿔오던 진짜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어보고 싶단다. 그러면서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우리가 필요 없는 시기가 분명히, 반드시 옵니다. 지금도 오고 있어요!"
연두농장법인이 자활공동체 선언할 때 자활하겠다고 한 것은 돈을 벌겠다고 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연두농장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농사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농사를 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자고 난리인데 오히려 반대로 나가겠다는 운영 방식은 고집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변 대표는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법, 돈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농사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사회의 유일한 대안가치라고 그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농사 운동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운동이다. 쿠바의 하바나에서 시민들은 텃밭분양을 받기위해 순서를 오래 기다려야 한다. 미국 보스톤의 중심지에서는 공원 텃밭을 얻어 자신의 정원을 꾸미는데 정열을 바치는 시민들도 있다. 도시의 텃밭운동은 현대인들에게 생태와 환경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 아이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 대표는 무엇보다 도시농사 운동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가난한 삶을 살도록' 하고 싶다. 또한 도시에서 경작바람을 일으켜 우리가 다음세대는 위해 사는 연습과 훈련을 새롭게 하게 만들고 싶다.
'다 같이 못사는 사회'를 주창하는 변 대표는 지금의 사회적 기업은 복지 시스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국민기초 자활사업은 자칫 실적 중심주의로 가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게 실무경험자로서 그의 의견이다.
"자활에서 운동자 개념이 빠져버렸어요. 그게 서운하고 안타깝습니다. 사회적 일자리 인건비 지원도 자칫 참가자들을 기능인으로 만들 수 있어요."
변현단 씨가 풀어주는 '농'이란 키워드로 보자면, '농'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생산품이며 직접적인 것, 다른 것들과 달리 화폐로 전환되지 않고도 바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농'은 인간을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소외시키지도 않고 왕따 당하게 하지도 않는다. '농'은 진정 우리를 살리는 마지막 보루임에 틀림없다는 게 농사운동가 변현단의 확신이다.
▲ 연두영농 조합법인 변현단 대표. ⓒ프레시안 |
'연두영농 조합법인'. 담도 없는 마당으로 들어서면 떡하니 기대서있는 나무현판이 보인다. 허물어진 시멘트 마당의 갈라진 틈으로 노란색 갓꽃이 한들거리고 애기똥풀꽃이 얌전히 피어있다. 3월 말에 이사한 시흥시 미산동에 있는 연두농장의 새 사무실은 뭔가 충만한 기운이 느껴진다.
시흥 전역에 농사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변현단 대표가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몇 년 간의 농사로 단련되어서인지 변 대표는 정말 튼튼하고 씩씩하게 보인다. 그가 집을 한 바퀴 빙 돌아 보여주더니 설명한다.
"이 집도 그렇고 저희 농장 밭고 그렇고 거의 그냥 무료로 임대받은 것이에요. 이 집 그동안 열심히 손을 봤는데 어때요? 너무 좋지요? 만약 우리가 여기 안 들어왔으면 이 집이고 뭐고 다 공장이 벌써 들어섰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연두농장 사무실만 빼놓고 옆집 앞집 할 것 없이 공장 건물이다.
"시흥 땅값이 1평(3.3제곱미터)당 100만 원인데요. 농사는 지으면 망하니 주로 공장 임대 사업을 하지요. 우리가 농사짓는 데서는 1평당 1만 원 정도 농작물이 생산된다고 보면 되지요."
변 대표가 예사로 이야기한다. 연두농장은 사람들이 아까워하는 나머지 99만 원에 해당하는 가치를 농사운동을 하는데서 찾으려한다.
"주말농장에서 주로 텃밭 분양을 하고 있어요. 다섯 평에 연간 7만5000원에서 10만 원 정도를 받고 또 농사짓는 교육도 하고 그러지요."
ⓒ프레시안 |
"1990년대 초반에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을 했지요. 그때 가슴이 꽉 막혀 있었어요. 배낭 메고 여행하면서 환경,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인터넷 신문 편집장, 정당활동, 팔도여행, 세계여행을 하다가 그가 터를 잡고 앉기로 작정한 것은 농사 때문이었다. 세상의 순환체계에 대한 의문을 가지다가 순환의 키워드를 찾은 것이었다. 그게 바로 농사의 '농'. 경북 어느 지역에서 막 밭터를 잡고 있는 그에게 연락이 갔다. 경기도 시흥의 작은 자리 자활영농사업단을 좀 맡아달라고. 그래서 시흥으로 왔다. '농촌 속으로!'가 아니라 '도시 속으로!'였다.
그는 '농'의 키워드로 도시빈민과 함께 하기고 마음먹었다. 농사운동, 농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때가 2005년도였다.
"10명의 기초생활수급자가 모여 있었지요. 그중에 9명이 여성이었는데 다들 꽃 따는 일을 하러 오는 줄 알고 있더라고요."
화훼 사업을 하는 줄 알고 자활사업단에 모인 왕초보 여성 농사꾼들을 데리고 그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농사에 대해 뭘 모르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했다. 농사 팀장으로서 농사를 가르쳐야 했으니 어깨가 참 무거웠을 것이다. 그래도 가장 쉬운 일이 밭에서 돌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물론 힘은 많이 들었지만. 그러나 가장 힘든 일은 팀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었다. 그들을 단순한 일꾼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그냥 일만 하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경영을 배우고 다 같이 생산기획자로 되려고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활은 없는 것이지요."
처음에 그냥 꽃이나 꺾으면 되는 일이려니 하고 왔던 자활사업단 아주머니들은 아주 힘들어했다. 그냥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똥거름을 만들어야한다고 고집피우는 팀장, 쉬운 길 다 마다하고 어려운 길만 찾아가는 팀장 때문에 아주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머니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살맛나는 나날이 되었다. 연두농장의 농사일은 다른 일과 참 달랐기 때문이었다.
ⓒ프레시안 |
변 대표는 연두농장의 모든 농사법을 유기 농업으로 고집한다. 농약을 치지 않거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비닐하우스는 물론이고 비닐일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농사기구도 호미와 삽 곡괭이 그런 것으로만 한다. 경운기 한 대 달랑 필요할 때 동원할 뿐이다.
"유기 농업 인증을 목표로 한다거나, 건강한 먹을거리로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을 공급한다, 그런 거 아니었지요. 우리 삶을 알기 위해서지요. 유기농이 우리 삶의 철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다 내 손으로 의식주가 해결되었는데 지금은 농사를 지어도 그게 진정한 내 것이 되지 않잖아요. 유기 농업으로 농사를 지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정말이에요."
영농사업으로 자활사업단을 꾸리는 동안 변 대표는 온갖 실험을 다해보았다.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나라에서 돈을 대어주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완전한 유기 농업,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어볼 기회가 또 오겠느냐는 것이었다. 뙤약볕에서 풀을 베다가도 꼭 풀을 베어야 농사가 되나? 풀을 그대로 둔 채 농사를 지어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공상도 해봤다. 돈은 안 벌어도 된다, 우리 쫄딱 망해도 좋다, 이 때 안해 보면 우리가 언제 이렇게 좋은 농법으로 농사훈련을 지어볼 수 있겠느냐고 고집을 피웠다.
다행히 사업단 팀원들은 변 대표를 믿어주었다. 손이 부르트도록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부엽토를 날라 오고 고추밭에서 벌레를 잡아냈다. 거기다가 변 대표가 검박하게 살자, 소비를 줄이자고 노래를 했기 때문에 팀원들은 휴대전화를 마련해도 김치냉장고를 들여 놓을 때도 눈치를 봐야했다. 하지만 변 대표와 함께 농사를 짓는 동안 조건부 수급자들, 생활보호대상자들이었던 그들이 당당하게 변화해갔다.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도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도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 고추포기처럼 그들도 푸르게 살아났다.
ⓒ프레시안 |
그러니 충분한 수입이 될 리가 없다. 변 대표는 농사로 돈을 벌자는 생각이라면 농사하지말자고 한다.
불편함이 만족스러울 때 농사를 짓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비를 줄이고 농사에 의존해서 의식주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분명 매우 불편한 생활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결국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자활은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돈을 많이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변 대표의 지론이다.
변 대표의 농사운동에는 농사교육 바람이 들어가 있다. 대상은 유치원 아이들에서 고등학교 학생(고3도 들어가 있다), 가족 등 지역주민 전부다.
그는 아이들이 땅을 만져보고 보이는 반응을 '경이로움'이라고 찬탄한다.
"유치원 아이들 앞에서 감자를 들고 이게 어디에서 나오는지 아는 사람? 했더니 전부 '슈퍼에서요!'하더군요. 땅 한번 만져 볼까 했더니 망설이던 아이들이 감자 싹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고 나더니 농장에 오는 시간만 기다려진다고 해요. 닭이 알을 낳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는 것은 생명의 순환을 알게 되기 때문이지요. 굳이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보기만 해도 알아요."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특별활동시간으로 농사짓기 반에 들어와 일한다. 20명 정도의 고등학생들이, 학원에 가야하는 아이들이, 놀토에도 밭에 와서 일한다는 것이다. 그만하고 집으로 가라고 해도 재미있다고 하며 조금만 더 하자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이다(그중에는 학원가기 싫어서 그런 애도 있다고 변 대표가 덧붙인다). 농사일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을 변 대표가 하는 것 같다.
지금 연두농장의 텃밭회원이 100명이 넘는다. 작년부터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한 이들 중에서 70%가 올해 다시 분양받아 농사를 짓는다. 회원들은 주말마다 만나 어느새 정다운 밭이웃이 되었다.
변 대표는 주말 오평텃밭 회원들한테 밭에서 돌멩이 거둬내는 일부터 하는 것을 보여준다. 농사짓기는 낭만적이거나 전원적인 감상으로 짓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어서이다.
"우리가 옆에서 농사짓는 방법을 보여주면 그게 바로 교육이 되는 것이지요. 퇴비 만들기 경우에는 한방찌꺼기를 수거해서 발효시키는데, 처음에는 우리가 만든 것을 팔았는데 이제 안 팔아요! 다들 퇴비를 만들어 볼 생각을 전혀 안하니까요! 직접 해보시라고 했어요. 두 번 째 농사부터는 퇴비 안판다고, 오줌똥 다 모아서 직접 만들라고 했지요!"
연두농장에서는 유기농으로 자란 온갖 채소가 나온다. 감자도 아주 인기가 높다. 그런데 변내표는 자기들 채소가 팔려나가지 않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즉, 모든 소비자가 생산자이기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텃밭회원들이 그전에는 소비자였는데 이제는 생산자가 되었잖아요. 우리 운동이 성공한 겁니다! 시흥지역이 생태도시가 되는 것. 우리기 더 이상 채소를 팔 필요가 없고, 우리 연두농장이 필요 없게 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텃밭 농사가 이웃에게 전해지고 전달된다면 그게 바로 순환이라는 말이다. 그때가 되면 변 대표는 재빨리 보따리를 싸들고 전부터 꿈꿔오던 진짜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어보고 싶단다. 그러면서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우리가 필요 없는 시기가 분명히, 반드시 옵니다. 지금도 오고 있어요!"
연두농장법인이 자활공동체 선언할 때 자활하겠다고 한 것은 돈을 벌겠다고 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연두농장 사람들은 돈을 벌려고 농사하는 게 아니라 돈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농사를 한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보자고 난리인데 오히려 반대로 나가겠다는 운영 방식은 고집스럽게 들린다. 하지만 변 대표는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법, 돈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농사야말로 앞으로 다가올 사회의 유일한 대안가치라고 그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농사 운동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인기 있는 운동이다. 쿠바의 하바나에서 시민들은 텃밭분양을 받기위해 순서를 오래 기다려야 한다. 미국 보스톤의 중심지에서는 공원 텃밭을 얻어 자신의 정원을 꾸미는데 정열을 바치는 시민들도 있다. 도시의 텃밭운동은 현대인들에게 생태와 환경문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 아이템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그러나 변 대표는 무엇보다 도시농사 운동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가난한 삶을 살도록' 하고 싶다. 또한 도시에서 경작바람을 일으켜 우리가 다음세대는 위해 사는 연습과 훈련을 새롭게 하게 만들고 싶다.
'다 같이 못사는 사회'를 주창하는 변 대표는 지금의 사회적 기업은 복지 시스템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국민기초 자활사업은 자칫 실적 중심주의로 가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게 실무경험자로서 그의 의견이다.
"자활에서 운동자 개념이 빠져버렸어요. 그게 서운하고 안타깝습니다. 사회적 일자리 인건비 지원도 자칫 참가자들을 기능인으로 만들 수 있어요."
변현단 씨가 풀어주는 '농'이란 키워드로 보자면, '농'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생산품이며 직접적인 것, 다른 것들과 달리 화폐로 전환되지 않고도 바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농'은 인간을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소외시키지도 않고 왕따 당하게 하지도 않는다. '농'은 진정 우리를 살리는 마지막 보루임에 틀림없다는 게 농사운동가 변현단의 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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