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정심 위원 교체 논란에 부쳐
최근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의 가입자단체 및 공익대표 위원 일부가 교체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건정심 위원은 모두 24명으로 구성된다. 공급자 대표와 가입자 대표와 공익대표가 각각 8 명씩이다. 이번에 모두 4명의 위원이 바뀌었는데, 그 중 가입자 대표 2인과 공익대표 1인의 교체를 두고 시민단체 등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빠진 사람은 경실련 김진현 보건의료위원장, 전국농민단체협의회 홍준근 사무총장, 경북대 학교 박재용 교수이며, 들어온 사람은 바른사회시민회의 김원식 정책위원장(건국대 경제학 과 교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송성원 대외협력부회장, 한양대학교 사공진 교수이다. 진보 성향의 위원들이 보수 성향의 위원들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놓고 의료계 등 공급자 진영에서는 은근한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의료계는 과거 건정 심에서 활동하던 진보 진영 인사들이 대부분의 사안에서 거의 무조건적으로 의료계의 주장 에 반대해 왔다고 지적하면서, 수가협상 등에서 유리해지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하고 있다.
반면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경실련, 민주노총, 건강세상네트워 크, 한국노총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1일 오전 보건복지가족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고, ‘건정심 위원 위촉절차 취소소송 및 위원직무집행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할 것이라 밝혔 다. 이들은 선임 절차가 잘못됐다는 주장과 함께 특정 위원이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성이 부 족하여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모두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할 경 우 양측의 주장 모두 아전인수 격인 측면이 있다.
먼저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보면, 스스로를 ‘가입자를 대표하는 시민단체’라 칭하고 있지만, 그들이 다수 국민의 목소리를 진정으로 대변해 왔는지는 의문이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지나 치게 편향된 주장만 해 왔던 것이 이번 교체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의료계가 큰 희망을 품는 것도 그리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외견상으로는 그 구성이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 건정심은 협상이나 토론을 통해서 결론이 내려지는 기구가 아니 다. 실속 없는 공방이 한동안 이루어진 다음에 정부가 미리 정해 놓은 결론이 채택되어 왔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주요한 사안이 건정심에서 표결을 통해 결정된 경우는 별 로 없었다.
의료계 입장에서 이번 위원 교체가 나쁜 소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 위촉된 위원들 몇 명이 건정심의 결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건강보험제도 운용에 대한 정부의 근본적 시각에 변화가 있음을 나타내는 일종의 ‘사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큰 기대를 갖기 어렵다. 건강보험과 관련된 중요한 정책을 건정 심이라는 형식상의 기구를 통해 내리고 있는 현재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가 기형적이기 때문 이다.
법적인 위상이 어떻든, 우리 건강보험은 사실상의 국영보험이다. 따라서 정부는 커튼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명확한 근거와 철학 및 정확한 장기적 예측을 통해 ‘직접’ 정 책을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의료계에서도 건정심 위원 일부 교체에 안도할 것이 아니라 이런 방향의 정책 변화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청년의사 / 김상기 기자 bus19@docdocdoc.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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