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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단식 노동자의 호소

해피곰 2010. 1. 26. 15:44

어느 단식 노동자의 호소

 

“작은 텐트에 누워서야 비로소 51년의 삶과 그 절반을 차지하는 운동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난 어떻게 살고 싶었던 것일까. 어떤 삶을 꿈꾸다 여기까지 와서 혼자 누워있는가.”

 

김진숙. 1970년대 가난한 집 딸이 그렇듯 10대에 ‘공순이’가 된 그도 돈 벌어 동생 학비 대
자기도 공부할 요량으로 부산의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서 남자도 힘들다는 용접

을 했다. 한 푼이라도 모으려 아파도 지각 한 번 안하고 잔업·휴일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먹고 살기는 여전히 힘들었고, 갑판에 떨어져 뇌수를 쏟아내는 동료들의 죽음을 보

아야 했고, 그들이 버려진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는 이 현실

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노조활동은 해고로 끝났다.

 

이렇게 해고된 지 24년이 지난 어느 날 한진중공업이 대량 해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홀

로 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13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그는 최근 민주노총 부산지역 본

부 홈페이지에 노동 현실을 절절하게 담은 ‘콩 국 한 그릇’이란 글을 올렸다.

 

2003년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두 명의 노동자가 죽음으로 저항했지만, 또 다시 1000명의

정규직과 그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의 해고가 눈 앞에 닥쳐오고 있지만, 이런 일은 너무 흔

하고 당연하다는 듯 세상이 관심도 두지 않는 현실에 대해 그는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나만

혼자 누워 굶고 있는가”라며 한국 사회와 노동 운동에 묻고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과정이 어떻게 되는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장할 사람이 이렇
게 많은데 왜 현장은 무너지는 걸까요. 똑똑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우린 번번이 패배

하는 걸까요. 민주노총이 왜 외면당하고 욕먹는지 우리만 모릅니다.”

 

그는 1986년 농성 때 맨 바닥에 라면 박스를 깔고 앉은 게 유일하게 피우던 요령이었음을

회고하며 이렇게 썼다.

 

“지금 제가 있는 텐트 안에는 솔직히 없는 게 없습니다. 전등에 전기스토브에 전기주전자에

전기담요에 MP3에 휴대폰 충전기에. 회사에서 전기를 끊었습니다. 순식간에 작동을 멈추는

버릴 데도 없는 쓰레기들. 20년 민주노조 운동은 그런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 쓰레기들

을 늘려오는. 그런 것들을 늘리기 위해 비정규직도 버리고 장애인도 버리고 노점상도 버리

고 농민도 버리고 여성도 버리고, 다 버리고 그런 것들만 애면글면 끌어안고 ….”

 

노동하는 이들이 없으면 이 사회가 멈춘다. 게다가 그들은 다수이다. 무시 당할 이유가 없

다. 위축될 이유가 없다. 이게 김진숙의 의문이자 호소이다.

 

경향신문 / 입력 : 2010-01-24 23:30:56ㅣ수정 : 2010-01-24 23:3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