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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려거든 바보가 되어라 뇌

해피곰 2012. 5. 20. 18:44

 

사랑을 하려거든 바보가 되어라

닥터 브레인...2003년 12월호

 

영화 <아이 엠 샘>은 정신지체로 아이큐가 7살 수준에 멈춘 아버지 샘과 곧 8살이 되는 딸 루시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눈물께나 흘리게 만드는 영화의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루시의 엄마가 갑자기 떠나가는 바람에, 정신지체 아버지와 귀엽고 영리한 딸 루시는 같이 생활하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두 사람의 생활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샘이 아버지로서의 양육 능력이 없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루시를 양부모의 집으로 옮겨 놓는다. 딸과의 행복한 날들을 빼앗기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 샘은 자신의 담당 변호사와 함께 자신이 얼마나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또 사랑할 능력이 있는 훌륭한 아버지인지를 입증해 보이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결국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두 사람은 함께 행복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이 찡한 부분은 아버지 샘이 딸 루시를 사랑하는 모습이다. 정신지체 장애인이기 때문에 샘은 아이를 똑똑하게 잘 키우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딸의 행복과 안정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 있어도 딸 아이 곁에 가까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대로 사랑을 실천하려 하였다. 바쁜 와중에 없는 시간 쪼개가며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부모들은 샘의 비합리적이리만치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에 가슴이 조금 뜨끔하였을 것이다. 지능이 높은 사람보다 지능이 낮은 샘이 근본적으로 더 원형에 가까운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예를 종종 봐왔는데, 왜 바보일수록 원형의 사랑이 가능한 것일까?

3층 구조 지닌 인간의 뇌

이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서 잠깐 우리의 뇌에 대한 공부를 해보자.

신경해부학자인 폴 맥클린 박사는 우리의 뇌가 그 기능과 성질, 화학작용까지 모두 다른 세 개의 하부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하부 구조의 뇌를 각각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그리고 인간의 뇌라고 명명하였다.

파충류의 뇌는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뇌로 주로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생리기능을 전담하는 뇌 부분을 말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심박동, 호흡, 삼킴 등을 조절하여 신체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포유류의 뇌는 변연계(Limbic system)라고도 하는데, 파충류의 뇌를 위에서 편안하게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포유류의 뇌의 중요한 기능은 주로 양육과 의사소통, 놀이, 그리고 감정을 주고받는 것 등이다.

가족이라는 결속력이 강한 사회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은 포유류부터라고 한다. 포유류는 가족을 만들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것이 가능하다. 동물의 왕국이 가끔 아주 감동적인 것은 아프리카 밀림의 냉혹한 자연의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동물들의 가족애를 볼 때이다. 먹이를 찾아 움직이던 사자 가족은 새끼 사자가 배가 고파 쓰러지면, 가던 길을 멈추고 새끼사자에게로 돌아와 같이 굶는다. 포유류가 자기 생명을 걸고 가족을 지키려하는 것은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의 본능적인 명령 때문이다. 이러한 포유류의 뇌가 없는 뱀과 악어와 같은 파충류는 자신들의 가족이나 주변에 있는 동료에 대해 대체로 무관심하다. 파충류는 알을 낳으면 보통 어디론가 사라진다. 파충류 어미는 새끼를 키우지 않는다. 뱀이나 도롱뇽은 자신의 새끼가 죽어가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지만, 원숭이는 죽은 새끼의 시체 앞에서 애달프게 울부짖는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뇌는 신피질(Neocortex)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우리 대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인간의 언어능력, 추리능력, 상징화, 지능, 의지, 판단력 등과 같은 이성적 기능이 모두 인간의 뇌인 신피질에서 비롯된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신피질이 큰 것은 호모 사피언스homo sapiens, 즉 우리 인간이다.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에게 신피질의 기능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으니, 결국 우리들 대부분의 신피질은 과부하 상태에 걸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의 뇌는 어디에

이쯤 설명이 되었으면 사랑의 뇌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 즉 포유류의 뇌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을 발생시키고, 또 외부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사랑의 감정을 감지하고 분석하는 기관이다. 엄마는 변연계를 통해 아기의 내면의 상태를 알아채고 그 아이의 요구에 본능적으로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서로 깊게 사랑하는 연인들도 바로 이 변연계를 통해 상대방의 내면의 감정 상태를 알아채고 그에 동조하고 교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변연계가 활발하게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깊게 본능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변연계의 기능이 망가지면 기본적인 사회적 활동은 물론, 본능적인 사랑이 불가능해진다. 변연계를 수술로 제거 당한 원숭이는 주위 동료들의 존재를 완전히 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또한 변연계 절제수술을 받은 햄스터는 새끼들이 부르거나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를 무시하고 새끼들을 양육하려 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기가 헤어질 때, 혹은 오랫동안 사랑했던 연인들이 헤어지게 될 때 느끼는 찢어지는 듯한 아픔은 사랑의 뇌인 변연계의 교류가 단절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본능적’인 아픔이다. 본능적이고 처절한 사랑의 아픔이기 때문에 그 상처의 후유증은 대개 오래 가고 심각하다. 외로움, 불안감, 우울증은 기본이고 심하면 다시 제대로 사랑하기가 힘들어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살던 기러기 아빠의 돌연사는 변연계의 단절이 가져온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럼 왜 바보일수록 원형의 사랑이 가능한 것일까?

원형의 사랑은 신피질의 이성적 명령이나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변연계의 직감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의 교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고 편안하며, 상대방의 안정감과 행복감이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지듯 사랑의 감정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머리를 써서 조건을 따지면서 합리적 또는 계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그 경쟁을 뚫고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쳐야만 하는 현대인은 사실 지나치게 신피질에 의존하여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보다는 나의 원칙, 나의 목표가 더 중요하다. 모든 삶의 에너지가 거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의 변연계 기능이 점점 축소되어 가고, 결국 변연계가 병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랑의 원형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바빠야 하고 너무 똑똑해야만 하기 때문에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직감적인 사랑을 느끼고 향유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바보는 대개 마음이 느긋하고 계산을 잘 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하고 그에 동조하고 교류할 줄 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 했던가?

글│김준기 goeating@hanmail.net
정신과 전문의. <한국결혼지능연구소> 부소장. 정신과 클리닉 <마음과 마음> 원장. 저서로는 <먹고 싶다 그러나 마르고 싶다> 와 <그가 내게서 떠나려 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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