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 (한의학 박사·제생한의원장)
항노화란 말이 많이 회자된다. 항노화란 노화를 질병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암을 정복하기 위해 여러 항암 치료법을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항노화 의학을 다루는 전문의 제도까지 도입되고 있다. 일본은 한 술 더 떠 약사, 간호사, 영양사, 임상병리 기사에 이르기까지 이 방면의 인정제도 시행을 검토 중이다. 웰빙시대를 맞아 생활의 질과 함께 수명을 연장하는 데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단순한 질병치료보다 인간의 생명력 증강에 치중해 온 한의학도 항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2002년 11월에는 한의학계가 주축이 되어 대한 항노화학회를 창립하고, 서울에서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그 자리에서 한의학의 생명철학을 항노화 개념에 적용시킨 구체적 실천방안도 마련했다. 네 가지로 정리해보면 ①항노화 장부(臟腑)기능 ②항노화 뼈와 관절 ③항노화 면역 내분비 ④항노화 피부미용이다. 항노화 치료를 한의학의 장점을 살려 네 가지로 세분해 연구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항노화의 치료대상은 노인만이 아니다. 인간은 성장이 끝나는 20세가 넘어서면 노화가 시작된다. 정자와 난자가 합쳐지면서 이미 노화가 시작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노화된 노인도 항노화 치료가 필요하지만, 노화 전에 젊음과 활력을 오래 지속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화는 한 번 진행되면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不可逆)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학에는 노화의 원인을 밝히려는 수많은 가설이 있다. 인체도 기계처럼 오래 쓰면 닳게 된다는 마모설에서부터, 노화는 유전자속에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된다는 유전자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 외 호르몬 분비 감소설이 있고 노폐물 축적설도 있지만, 특히 산소를 노화의 주범으로 보는 활성산소이론이 흥미롭다. 산소가 철을 녹슬게 하듯 인체를 산화시킨다는 설이다.
흔히 듣는 항산화제도 인체가 녹스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다. 몇몇 비타민이나 미네랄과 효소가 항산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C나 여러 약물을 주사하기도 하지만, 귤 등 과일과 해산물, 적포도주를 적당히 섭취하면 대체가 된다.
항노화 치료에 각종 호르몬 등 다양한 방법이 응용되지만, 그 비용과 부작용을 감수할 정도로 유효하지는 않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노화의 시계를 멈출 수는 없다.
진나라시대 갈홍은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사후에 시체가 관속에서 나와 시해선(尸解仙)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가 추구하던 금단대약(金丹大藥)은 이 시대에 전해지지 않지만, 그 정신은 면면히 내려온다. 신에게 제사지내거나 뜬구름을 잡으려 하지 않고, 실제 선약(仙藥)을 만들어 불사(不死)를 추구했다.
그렇지만 전통 한의학 이론은 노화와 죽음을 거부하지 않는다. 생장장로사(生長壯老死)의 과정을 인정하면서 젊고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을 추구한다. 연년익수불로단(延年益壽不老丹)이란 처방은 모든 항노화 한방치료의 의미를 대변한다. 올바로 먹고, 잘 자고, 좋은 생각을 하고, 적당히 운동하고, 휴식하며, 원만한 부부생활에 위생적인 환경에서 순리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면 천수를 다 누린다는 것이다.
출처 영남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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