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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건보 특수성은 ‘무시’ 업무 효율성만 ‘중시’

해피곰 2009. 3. 23. 20:12

연금·건보 특수성은 ‘무시’ 업무 효율성만 ‘중시’

 

 

ㆍ정부·여당 일방적 추진 졸속 우려

ㆍ보험 성격 달라 지역가입자들 납부 거부할 수도 

ㆍ전문가 “논의 필요”… 한나라당서도 “무리한 입법”

 

4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정부와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4대 보험 통합징수법’의 국회 통과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4대 보험 통합징수법은 현재 국민연금공단과 국민건강보험공

단 등 각 공단이 맡고 있는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의 징수 업무를 건강보험공

단이 통합해 맡도록 한 법안이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지난달 25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를 통과했지만 야

당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4대 보험은 당초 각각 다른 목적과

대상자를 위해 도입됐다. 전체 보험료만 연간 51조원에 이르는 만큼 사회보험료를 관리하는

문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뤄져야 함에도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4대 보험 통합징수를 둘러싼 문제점을 짚어본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관리업무는 크게 자격관리·징수·급여 등 3가지로 나뉜다.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4대 보험 통합징수법은 각 공단이 갖고 있는 징수 업무를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하고 자격관리·급여 업무는 종전대로 공단별로 시행하는 방식이다.

 

통합 징수론자들은 징수업무가 통합되면 공단별 업무 중복인력이 감소되고 고지서 발송비용

이 절감되는 등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각 보험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징수기관만 단일화할 경우 자칫 납부 거부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는 우려가 적지 않다.

 

◇ 추진 배경 = 건보공단을 징수 통합기관으로 선정한 것에 대해 정부·여당은 ‘높은 징수율’

을 이유로 들고 있다. 보험 특성상 연금과 건강보험에는 소득 파악이 어려운 지역가입자들

이 다수 존재한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월급에서 곧장 보험료가 빠져나가므로 징수율을 따

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러나 지역가입자가 되면 차이가 생긴다.

 

지난해 건보공단의 지역가입자 징수율은 95.1%로 연금공단보다 14.5%포인트 높다. 여기에

는 건보공단의 지사 수가 많다는 점이 한몫 했다. 건보공단 지사는 178개로 연금공단(91개)

과 근로복지공단(55개)의 지사를 합친 것보다 많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징수 인력과

경력 등이 건보공단이 앞선다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정치적인 논리로 통합징수 주체가 건보공단으로 결정됐다는 시각도 있다. 건보공

단 통합징수 방안은 박재완 현 국정기획수석이 한나라당 의원 시절인 2007년 1월 발의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지난해 11월 같은 법안을 재발의한 데는 박 수석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 실세였던 정형근 전 의원이 건보

공단 이사장으로 재임 중인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징수방식 차이 무시 = 현 통합징수방안이 가진 문제점은 각 보험별로 징수방식의 차이

점이 있음에도 이를 고려치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산재·고용보험은 직장가입자만 있기 때문

에 징수저항이 거의 없어 통합에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가입 중인 지역가입자들에 대한 징수방식에 차이가 있다.

 

건강보험은 질병 치료 등 생명과 직결된 제도여서 지역가입자들의 납부율이 상대적으로 높

다. 또 보험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할 경우 강제징수가 가능하다. 지난해 보험료를 내지 않아

재산 등을 처분한 사례가 163만건에 달한다.

 

반면 국민연금은 미래를 대비한 제도로 국민의 체감률이 낮다.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의

경우 당장 수입이 떨어지면 납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기 쉽다. 강제징수 조항도 없다. 국

민연금의 지역가입자 260만여명의 절반 이상인 137만명에게 연금 미납 이력이 있다.

 

통합징수에 따라 지속적인 상담·설득 작업이 미흡할 경우 언제라도 연금 가입 이탈자가 생

길 수 있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는 다른 이유로 통합 징수를 반대하고 있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산재·고용보험 징수 통합시 민원처리 과정이 길어져 효율성이 떨어진

다”며 반대하고 있다.

 

◇ 졸속 추진 논란 = 지난해 11월 법안이 재발의된 뒤 법사위에 상정될 때까지 통합징수법

관련 논의는 파행을 겪었다. 정부는 법안 논의를 위해 두 차례 공청회를 열었지만 논란 속

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보건복지위에서도 민주당 의원의 퇴장 속에 여당의 일방적인 찬

성으로 법안이 가결됐다.

 

법안을 제출한 한나라당 내에서도 ‘무리한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혜훈 한나라

당 의원은 일부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해 국세청을 통한 통합징수

법안을 최근 발의했다.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남찬섭 교수는 “징수 통합과 같은 제도 변경은 국민편익이나 각 사회

보험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도 정부는 공공기관 효율화 명분만 앞세우고 있다”며 “충분한 사

회적 논의를 거쳐 통합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 행정학과 이광석 교수도 “국민연금제도에 대한 오해와 불신, 건강보험의 막대한 재

정 적자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며 “징수 통합을 서두를 게 아니라

두 제도의 발전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 / 송진식 기자

입력 : 2009-03-22 18:36:22ㅣ수정 : 2009-03-22 18:3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