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남 목사, 'MB 비판' 유서 남기고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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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6일 밤 10시 50분]
범민련 초대 의장을 지낸 강희남(89) 난산교회 명예목사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 전환을 요구하며 6일 오후 전북 전주 효자동 자택에서 목을 매 숨졌다.
황재우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조직국장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30분께 강희남 목사가 자택에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부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오후 5시 30분께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강 목사는 유언으로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는 글을 남겼다.
강 목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을 촉구해왔다. 그는 지난해 가을에는 7일 동안, 올해 5월에는 9일 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다. 황 조직국장은 "5월 단식을 할 때,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현재 강 목사의 시신은 자택에 안치돼 있다. 강 목사의 시신은 자택에서 이뤄지고 있는 난산교회 목사들의 임종 예배가 끝난 후, 이날 밤 11시께 빈소가 마련될 전주 전북대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1990년대 재야 통일운동의 산 증인
고 인은 1990년 11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를 결성해 10여 년간 통일운동을 이끈 90년대 재야 통일운동의 산 증인이었다. 강 목사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조문을 시도하다 구속되는 등 90년대 세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강 목사는 1980년대 반독재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국가원수 모독죄로 구속됐고, 4·13 호헌에 반대하며 옥중에서 40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2003년 이라크파병저지 목포~서울 천리도보행진과 청와대 앞 단식 투쟁을 벌였다. 최근엔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과 '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를 만들어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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