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주의' 덫에 걸린 건보공단
‘성과주의’가 건강보험 행정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 갑작스런 업무 확장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건강보험공단이 비근한 예다.
공단은 심평원과의 업무 중복 논란에서부터 공단 내부의 조직문화 쇄신까지 몰아치는 이슈
로 숨가쁜 상반기를 보냈다.
자발적인 자기 혁신이라기보다는 빠른 성과를 지향하는 상부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빚어낸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상당부분 작용, 조직 전체에서 묵직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초기 이같은 변화는 학습량이 엄청나고 수용도가 빠르다고 알려진 정형근 이사장의 ‘기대’
에 근접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쯤으로 인식됐었으나, 최근 그 수위가 도를 넘어선 현상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실무 역량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들은 공단 직원들의 직무 숙련도와 학습역량을 제고하는 성
과를 냈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인 효과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공단은 적어도 조직문화나 직원 복지 면에서 보건복지 산하 공공기관의 정체성이 무
색할 정도로 상식 밖의 퇴로 걷고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공단 직원들은 요즘 퇴근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평일 야간근무와 밤샘
근무는 물론 반강압적인 주말 출근 눈도장도 불사하는 지경이다.
일부 임원들은 퇴근 시간 이후에도 사무실로 복귀해 야근 현황을 체크하는가 하면 주말 출
근상황도 일일이 파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부 직원이 과로로 쓰러지는 등 내부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급기야 각 실마다 혈압측
정기가 설치되는 이벤트도 벌어졌다.
각종 감사 때마다 회자됐던 ‘인력이 과다하고 업무는 방만’하다는 한 때의 수식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에서 일말의 의미를 찾을 지 모르나, 내부 사정을 알고 보면 자가 혈압측정으로
최소한의 건강을 체크하라는 ‘혈압기’의 출현은 자못 섬뜩하기까지 하다.
단순히 업무량 측면뿐 아니라 심리적인 압박감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최근 과감한 인사 개편을 통해 “찍히면 좌천, 눈에 들면 자리 보전”이라는 인식이 확산된데다
간혹 언론보도라도 나올라치면 내부 검열이 삼엄한 탓에 전전긍긍하는 실무자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관리자들은 자기 판단력을 잃고 엄한 아버지의 회초리가 무서워 자기표현을 스스
로 말살시켜버린 ‘어린아이’를 닮아가는 형국이다.
실적 위주의 허술한 행사로 기관의 질을 떨어뜨리는 풍경도 목격된다.
정형근 이사장 취임 이후 매주 개최하고 있는 ‘금요 조찬세미나’가 대표적인데, 매주 토론
주제에 맞는 적임자를 초청하기 어려운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졸속 섭외와 부실한 준비로 대
안 토론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은 자주 목격됐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매번 ‘보험자 역량 강화’를 주창하면서도 의료산업화와 같은 첨예한 쟁
점에서 오히려 보험자적 정체성과 대국민 보장성 강화의 정당성에 배치되는 정책논리를 학
습시킨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올초 건강보험 중심가를 뒤흔들었던 공단과 심평원의 갈등도 '성과주의'의 한
단면으로 읽힌다.
약가업무 중복을 놓고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양 기관은 최근 현지조사 업무 중복으로 또
다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중이다.
양 기관 갈등이 발생한 영역이 공교롭게도 모두 단시간에 성과를 지표화할 수 있으면서 대
내외적으로 관심도가 높은 현안이고 보면, 여기서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의식에 기반한 조급
증을 읽어내는 시각에도 일면 수긍이 간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정부분 정치적 성향을 띨 수 밖에 없는 것이 공공기관의 숙명인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자의반 타의반 과도한 성과주의가 단시간에 몰고 온 갈등과 분열을 공단
은 주지해야 한다.
흘러가는 바람이라 하기에는 그 정도가 우려스러운 공단의 혼란은 다름아닌 실생활의 영역
에서 공단과 불가분의 정책적 관계를 맺고 있는 국민에게 머지않아 더 큰 댓가를 요구할 것
이기 때문이다.
데일리팜 허현아 기자 (maru@dreamdr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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