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훈련에 동원된 공무원들 '똘이장군식' 사상교육 받고 있다?
올해로 12년째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는 전모(40)씨는 지난 16일 새벽 동료들과 함께 동영
상을 봐야했다. 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의 일환이었다. 동영상을 보던 전씨는 순간 예비군 훈
련에 다시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북한의 타격 대상은 대한민국’
‘지구상에서 가장 호전적인 세력이 우리를 겨누고 있다’는 자막에 어린 시절에나 보던 ‘구닥
다리 반공홍보영상’에 전씨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공무원이니까.
남북 전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2010년 을지연습 안보영상물①ⓒ 민중의소리
천안함 침몰 관련 내용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국민의 안이함 속에서 천안함 사건이 발
생했다’ ‘국민들이 천안함 조사 결과를 의심하고 전쟁은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는 낯 뜨거
운 문구와 설명들이 난무했다. 국민 책임이라고? 도대체 전씨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
지만 또 어쩔 수 없었다. 전씨는 ‘높은 사람’이 아니니까.
사실 예전에는 을지연습에서 재난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훈련을 했
었다. 느닷없는 반공 교육에 전씨는 답답함을 떨치지 못했다. 누구하나 지적할 수 없는 분
위기에서 교육이 진행되니 전씨와 같은 생각을 가져도 왜 이런 교육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전씨는 “공무원들에게 편협한 인식을 주입시키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털어놨다.
남북 전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2010년 을지연습 안보영상물③ⓒ 민중의소리
이번 훈련에서 정부는 이른바 ‘반공교육’외에도 소산훈련을 실제로 실시하겠다고 밝혀 물의
가 일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10을지연습 강화지침’에 소산훈련을 실시한다고 명시돼
있다. 소산훈련이란 전쟁 등 유사시를 대비해 기밀서류 또는 행정서류 등을 안전하게 분산
해서 지정시설에 옮겨놓는 훈련을 말한다. 매년 을지훈련이 진행되도 소산훈련을 실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전쟁분위기를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기도
했다.
을지연습은 국가비상사태에 대비해 지난 1968년부터 행정기관 및 주요 민간업체들이 참여
하여 비상시 신속하고 효과적인 국민 생활 안정, 정부기능 유지, 군사작전 지원을 목적으로
실시하는 국가위기관리종합훈련이다. 올해 43회째를 맞이하는 이 훈련은 입법, 행정, 사법
부 등 국가기관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등 총 4000여개 기관 40여만 명이 참가하고 있다.
‘전쟁’을 가정하고 진행되던 을지훈련은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전쟁보다는 대테러, 전산망
사이버공격 등 국가 재난이나 위기를 관리하는 훈련으로 전환되는 추세였다.
분위기가 바뀐 건 올해부터다. 천안함 사건이 계기라고 한다. ‘전쟁’을 상정하는 훈련과 80
년대나 했을 법한 ‘사상교육’까지 전씨를 비롯한 공무원들은 1년만에 ‘똘이장군’ 만화를 보
던 시절로 되돌아 간 셈이다. 오죽하면 민방위 복장이 재등장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공무원사회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전쟁을 부추기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
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남북 전쟁과 갈등을 조장하는 2010년 을지연습 안보영상물②ⓒ 민중의소리
전국공무원노조 조창형 대변인은 “이번 을지연습 자료를 보면 이명박 정부가 전쟁을 부추기
고 반공을 주입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공무원들을 동원해 전쟁분위기를 조장하고 보수
세력을 결집 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지적했다.
매일노동뉴스 / 정혜규 기자 jhk@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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