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 묻지도 따지지도 않다간 다쳐!"
[안종주의 '위험사회'] 사전예방원칙, 지금 한국에서 왜 필요한가?
사전예방원칙은 결코 새로운 이념이나 철학, 또는 실천 강령이 아니다. 고대 조상의 지혜가 부활한 것이요, 현대인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 모시고 온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언에는 "먼저, 해가 되는 일을 하지 마라(First, Do No Harm)"라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열심히 암 검진을 하고 내시경으로 위와 대장을 들여다본다. 바로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은 히포크라테스의 정신, 사전예방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마구 담배를 피워대며 술에 탐닉하고, 돼지처럼 먹고, 앞뒤 살피지 않고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인은 사전예방원칙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부류와 이를 무시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부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위험을 피하려 애쓰는 사람과 위험을 만드는 사람들로 나눌 수 있다. 그 위험은 개인의 건강이나 생명일 수도 있고 사회 건강이나 생태계 건강일 수도 있다.
조상의 지혜를 가장 먼저 빌린 것은 독일이었다. "Precautionary principle"은 독일어 "Vorsorgeprinzip"에서 온 것이다. 독일은 1970년대 주의 깊게 사회 개발 계획을 세워 환경 파괴를 피하려는 생각에서 이 개념을 만들었다. "Vorsorge"란 말은 예견 또는 주의를 하다는 뜻이다. 독일 정부는 1980년대 초 북해(North Sea) 오염과 지구 온난화, 산성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정책을 도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 원칙을 사용했다. 독일인들은 이 원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환경 친화적인 경제 성장을 정당화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의 선견지명은 1992년 리우환경회의를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됐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리우선언에는 "심각하고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주는 위협이 있는 곳에서는 과학적 확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비용 효과적인 대책을 미루는 이유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전예방원칙을 담은 내용이 들어 있다. 1984년 북해 보전을 위한 첫 국제 협약에 국제적으로는 처음 도입된 사전예방원칙은 북해 장관급 선언(1987)과 오존파괴 물질을 규제하기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1987) 등에 이어 리우선언을 계기로 해 그 뒤 각종 국제 협약과 선언에 활발히 녹아들었다.
독일과 유럽 국가, 그리고 국제 협약에서의 녹색운동과 사전예방원칙에 대한 관심과 달리 미국에서는 1993년 <뉴욕타임스>가 오늘날 많은 환경 문제가 과장된 것이라는 내용의 일련의 기사들을 내보냈다. 이를 계기로 이와 관련한 많은 기사들과 책들이 나왔으며 이른바 '건전 과학' 조직들도 설립됐다. 이들은 환경 및 산업보건 규제를 공격했다.
이즈음 지구 기후 변화와 내분비계 장애 물질(환경호르몬)과 같은 새로운 문제들이 터져 나와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일깨워주었다. 환경단체들과 이들과 함께 일하는 과학자와 법률가는 사전예방원칙이 위해를 예방하기 위한 행위를 촉진하면서 과학의 한계를 다루는 중요한 패러다임을 설명하고 있다고 느꼈다.
환경주의자들은 사전예방원칙이 유럽과 국제 협약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명성을 얻었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들은 이 원칙의 밑바닥에 깔린 근본을 알고 있었지만 실전에서 사전예방이라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또 의사 결정에 이 원칙을 녹여낼 확실한 구조가 없었다.
미국에서 환경 및 공중보건 의사 결정 때 사전예방원칙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이 원칙을 작동하게 하는 구조와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모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전예방원칙 옹호론자들은 느꼈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사전예방원칙에 일정한 형태를 갖추게 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기 위해 과학과환경보건네트워크(SEHN)는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35명의 과학자, 풀뿌리 환경운동가, 정부 연구자, 노조 대표들을 1998년 1월 23~25일 위스콘신 주 레이신(Racine) 인근의 풍광이 뛰어난 윈드포인트(Wind Point) 마을에 있는 역사적인 유명 건축물인 윙스프리드(Wingspread)에 초청했다.
이곳에서 열린 워크숍은 이 원칙이 발전된 역사와 과학적, 역사적 전후 맥락, 그 기초를 이해하고 어떻게 유독 화학물질 관리 정책과 농업, 생물 다양성에 이 원칙을 실행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마침내 참가자들은 사전예방원칙을 요구하고 규정하는 합의된 성명서를 발표했다. "어떤 행위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위협을 가할 때 그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전 예방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윙스프리드 성명은 4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1) 인과관계에 대한 과학적 증명에 앞서 예방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2) 공중보다는 (개발 등) 행위의 제안자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을 할 책임이 있다. (3) 어떤 행위에 의해 위해가 발생한다는 증거가 있을지도 모를 때에는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해 합리적인 범위의 대안들을 고려해야 한다. (4) 의사 결정이 사전 예방적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 과정이 개방되어야 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과 함께 민주적이어야 하며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을 당사자들을 포함해야 한다.
▲ 풍광이 뛰어난 윙스프리드 건물. 이곳에서 오늘날 환경보전 등을 위해 적용하는 사전예방원칙의 구체적인 내용들이 만들어졌다. ⓒjohnsonfoundation.org |
윙스프리드 회의 후 생명공학 반대자들은 국제회의 때 이 성명에 담긴 사전예방원칙을 사용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이를 계기로 서서히 사전예방원칙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사전예방원칙이 환경 분야뿐만 아니라 식품, 과학, 건강 등 여러 분야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점차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은 과학이 지닌 불확실성 때문이다. 계몽주의 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과학은 마치 신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과학은 기술과 결합해 부의 창출과 함께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수명을 연장시키는, 신에 가장 가까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21세기 들어 와서도 여전히 과학을 전지전능한 도구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줄기세포의 과학을 무기로 한 황우석 박사는 불구와 난치병을 모두 해결해주는 신의 대리인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결국 이것은 과학 사기로 결말이 나면서 과학의 한계와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인간은 전지전능할 수 없다. 과학은 인간 활동의 산물이다. 따라서 인간의 과학 또한 전지전능할 수 없다. 미래 예측은 인간이 한다. 그래서 미래 예측은 아무리 첨단과학을 동원해 하더라도 정확하지 않다. 인간이 만든 슈퍼컴퓨터를 비롯해 첨단장비를 모두 동원해도 기상 변화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국제 뉴스의 재난 보도를 통해 실감하고 있다.
환경과 우리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물질에 대한 예측도 정말 힘들다. 그런 사례를 많이 보아왔다. '기적의 광물' '마법의 물질'로 부르며 인간이 사용해왔던 석면은 지금은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 '조용한 시한폭탄'이란 이름의 천덕꾸러기가 됐다. 냉장고 냉매와 각종 스프레이에 들어갔던 염화불화탄소(프레온가스)란 물질도 한 때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물질이었지만 지금은 오존층을 파괴하는, 그리하여 지구촌 사람들의 피부암 등 각종 질병과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물질로 전락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과학기술만능주의와 이를 바탕으로 한 무분별한 개발이 여전히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사전예방원칙이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몇 환경운동가와 일부 학자가 자신들의 주장에서 이 원칙의 적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나 언론에서 이 원칙은 조명을 받지 못하거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그리고 최근의 건강영향평가 제도 등은 사전예방원칙과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들 영향평가제도가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오히려 각종 개발과 공사에 면죄부를 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4대강 사업을 벌이면서 환경영향평가제도는 있으나 마나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사전예방원칙은 과학의 불확실성 때문에 탄생한 개념이다. 한번 파괴된 환경은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종의 절멸은 결코 그 종을 다시 완벽한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인간의 생명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의 생명과 단 하나뿐인 지구, 단 하나 밖에 없는 한반도, 단 하나밖에 없는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의 생태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개발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치밀하고 많은 연구와 토론을 거쳐야 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 사업은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가. 그렇다면 사전예방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 사업인가. 찬찬히 살펴보자.
리우선언과 윙스프리드 성명, 그리고 이를 구성하고 있는 4가지 요소를 다시금 떠올려 보자. 리우선언에는 "심각하고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주는 위협이 있는 곳에서는 충분한 과학적 확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는 비용 효과적인 대책을 미루는 이유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사전예방원칙 내용이 들어 있다. 4대강은 대한민국의 젖줄이고 그 사업 내용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대규모 공사인 데다가 많은 보를 건설하는 등 한 번 건설하고 나면 이를 되돌리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로 인해 수질이 좋아질지, 나빠질지, 홍수 피해를 줄일지, 피해를 더 늘릴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피해가 없다는 것을 사업자, 다시 말해 정부가 과학적으로 제시해야 하는 데 이게 현재로서는 크게 부족하다.
또 윙스프리드 성명은 "어떤 행위가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위협을 가할 때 그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사전 예방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4대강 사업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해로운 위협을 가한다는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전 예방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4가지 요소 가운데 (1)과 (2)는 앞서 언급한 것과 중복이 되므로 (3)과 (4)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3)은 어떤 행위에 의해 위해가 발생한다는 증거가 있을지도 모를 때에는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해 합리적인 범위의 대안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4)는 의사 결정이 사전 예방적이 되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 과정이 개방되어야 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과 함께 민주적이어야 하며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을 당사자들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바로 이 (3)과 (4)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종교인들이 일어나고 환경단체들이 이 살인적인 폭염 속에 함안보와 이포보 타워크레인 위에서 생명을 건 고공 농성을 20일째 벌이고 있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거나 중단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을 살리고, 강의 생명을 살리고, 한반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지금 사전예방원칙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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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5일 이포보 위에서 농성 중이던 환경운동가들이 현수막을 펼쳤다. 박평수 고양환경연합 집행위원장은 "흘러라 4대강"이라고 쓴 손펼침막을 들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어디까지나 뭇 생물과 무생물의 생명까지도 지키고자 하는 행동인 만큼 문수 스님처럼 더는 귀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4대강 사업은 무슨 보험이 아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행할 사업이 결코 아니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이 사전예방원칙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묻고 따져서 중단을 포함해 합리적인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잠재적으로 영향을 받을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포함시켜 민주적이고도 개방적인 논의를 거쳐 의사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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