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승강기 검사기준’ 시행 후 1개월 경과됐음에도 비상통화장치 이중설치 ‘저조’
본지, 전국 아파트 100개 단지 대상 조사결과…설치율 9%에 그쳐
승강기 비상통화장치 이중설치 등을 골자로 한 개정 ‘승강기 검사기준’이 시행에 들어간지 한 달여가 지났음에도 아직 설치를 완료하지 못한 아파트가 전체의 91%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지난 15일부터 3일간 전국 아파트 100개 단지 관리소를 대상으로 ‘승강기 비상통화장치 이중설치 여부’를 조사한 결과 개정 ‘승강기 검사기준’을 충족토록 비상통화장치를 보완한 아파트는 9개 단지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정 승강기 검사기준에 맞도록 비상통화장치의 설치를 마쳤다’는 단지는 전체 100개 단지 중 9개 단지(9%)에 그쳤고, ‘아직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는 단지는 무려 91개 단지(91%)인 것으로 나타나 대부분 아파트에서 아직 승강기 비상통화장치에 대한 보완을 실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승강기 검사기준’에 따르면 승강기 카 내부와 외부 장소를 연결하는 통화장치는 당해 시설물 관리인력이 상주하는 장소에 이중으로 설치해야 하고, 시설물 내부통화가 연결되지 않을 경우 승강기 유지관리업체 또는 자체 점검자에게 자동 연결돼 신속한 구조 요청이 이뤄질 수 있는 통화장치를 갖춰야 한다.
이러한 개정 기준에 맞도록 승강기 비상통화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승강기 정기검사를 받을 경우 해당 승강기는 조건부 합격 처리되고, 조건부 기한 만료일까지 지적사항이 보완되지 않았을 때는 최종 불합격 처리돼 승강기가 운행정지될 수 있어 일선 아파트 관리현장에서도 발빠른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상당수 아파트에서는 과도한 설치비용, 주무부처의 홍보 부족, 관련 업체·제품에 대한 신뢰 부족 등을 이유로 공사를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노원구 A아파트 관리소장은 “비상통화장치 보완을 위해 설치비용을 알아보니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만만찮은 설치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표회의 의결을 받지 못해 공사가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B아파트 관리소장도 승강기 유지관리업체에 문의한 결과 총 설치비용이 1천만원 이상 소요된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비용 부담이 커 대표회의와 상의한 끝에 아직 공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남 창원시 C아파트 관리소장은 “정부에서 개정 승강기 검사기준에 대한 사전 홍보가 매우 부족했다고 생각한다.”며 “개정 기준에 대한 안내 공문이라도 받았더라면 미리 대비할 시간이 있었을텐데 뒤늦게 개정 사실을 알게 돼 제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경기 구리시 D아파트 관리소장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의 품질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언젠가 비상통화장치에 대한 보완은 해야겠지만 관련 제품들의 품질을 믿을 수 있게 된 후 공사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상당수 아파트는 개정 기준 시행 전인 지난달 15일 이전으로 승강기 정기검사를 앞당겨 받기도 했다. 아파트 관리현장에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지난달 15일 이전에는 비상통화장치 보완을 실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승강기 정기검사를 받더라도 지적사항에 포함되지 않아 내년 검사시까지 1년여의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안양시 G아파트 관리소장은 “우리 아파트의 경우 개정 기준 시행 전인 지난달 10일 승강기 정기검사를 완료해 비상통화장치에 대한 지적사항은 나오지 않았고, 현장에서 검사원으로부터 ‘다음 검사시까지 조치를 완료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대략 1년의 여유가 생긴 만큼 주변 상황을 지켜본 후 천천히 공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문제점에 대해 아파트 입주민 단체 관계자와 일선 관리소장 등은 개정 기준에 대한 계도기간 부여, 비상통화장치 공동구매 추진 등을 통해 아파트 관리현장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민 단체 관계자는 “현재도 각 아파트에서 승강기 유지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상황인데 비상통화장치 보완을 또 실시하라고 하니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지자체별로 비상통화장치 공동구매를 추진해 설치비용을 대폭 낮추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이와 함께 경기 오산시 E아파트 관리소장은 “안전관리 측면에서 승강기 비상통화장치 보완은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기축아파트에서는 비상통화장치 보완 외에도 추진할 공사가 많다,”며 “현실적으로 개정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아파트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합리적인 제품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개정 기준에 대한 계도기간을 일정기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한 관계자는 “현재 승강기 비상통화장치 보완에 있어 관련 정보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파트가 많은 만큼 정부 등에서 공사와 관련된 일련의 정보를 제공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안전행정부 관계자는 “개정 승강기 검사기준 시행 전 이미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뒀던 상황에서 다시 계도기간을 부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또 승강기안전관리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40여개 제품에 대한 가격 등의 정보가 상세히 게시돼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면 각 아파트에서 합리적 판단을 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도 승강기안전관리원 보수교육 등을 활용해 승강기 비상통화장치 보완에 대한 제반사항을 안내하고, 승강기 검사시 홍보문을 배부하는 등 홍보를 강화해 아파트 관리현장의 조치를 독려할 것”이라며 “개정 승강기 검사기준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것인 만큼 각 아파트 관리현장에서도 입주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적극 협조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