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與-與 법안전쟁’

희한한 ‘與-與 법안전쟁’

 

 

복지위 “건보공단이 4대보험 통합징수” vs 재정위 “국세청이 맡아야”

 

여야의 ‘입법 전쟁’이 잠시 수그러든 가운데 이번에는 한나라당 내에서 건강보험과 국민연

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의 통합징수를 둘러싸고 기획재정위원회와 보건복지가

족위원회 소속 의원들 간에 이례적인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다.

 

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달 25일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통합징수 관련

법안을 심의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이 법안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다른 기관의 징수

업무까지 맡는 방안을 담고 있다. 당 지도부에선 이를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한다는 방

침이었기 때문에 상임위 파행도 감수했다.

 

하지만 여당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재정위에서 “4월 국회에서 원점부터 다시 논의하자”

며 제동을 거는 일이 생겼다. 국세청 산하에 별도의 징수공단을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정위의 반란=재정위는 이달 말 국회에서 4대 보험 통합징수와 관련한 공청회를 열고

4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처리해 법사위로 넘길 계획이다.

 

재정위 소속인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작년 11월 국세청 산하에 징수공단을 설치해 4대

보험을 통합징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사회보험료 부과·징수 등에 관한 법’ 제정안을

냈다. 이는 건보공단이 다른 기관의 보험까지 통합징수하도록 한 복지위 법안과 징수 주체

가 다르다.

 

이에 대해 서병수 재정위원장은 “재정위와 복지위가 함께 관여된 사안인데 복지위 논리대로

만 간다면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복지위에 ‘끝장 토론’을 제안했다.

 

재정위 관계자는 “이혜훈 의원 법안은 민주당 의원들도 공동 발의한 것”이라며 “법사위에서

복지위 법안과 함께 심사해 보고 결론이 안 나면 본회의에 넘겨 투표하는 방식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재정위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면서

“아직도 상임위 중심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몇 가지 배경=재정위 소속 일부 여당 의원은 ‘토론 부재(不在)’를 지적한다. 한 해 50조

원이 넘는 4대 보험료를 징수하는 기관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당내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 위원장은 “17대 국회에서는 국세청 산하 징수공단 설립 방안이 재정위의 전신인 재정경

제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까지 갔다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며 “당시에도 명분이 있

었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정위가 지적하는 ‘토론 부재’에는 청와대와 정부, 당 지도부에 대한 서운한 감정도 묻어

있다. 통합징수기관이 국세청에서 건보공단으로 바뀐 데는 17대 국회에서 복지위에 있었던

박재완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과 전재희 복지부 장관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재정위의 한 관계자는 “박 수석이 결정하자 당이 그대로 수용했다”며 “재정위 소속 의원들

의 자존심이 상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상임위 중심 국회 가능성=당 지도부는 무척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당론 분열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정위를 주저앉힐 명분도 마땅찮다. 재정위 방안은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을 높여 장기적으로 보험재정을 건전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복지위 방안은 초기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정책위 핵심 관계자는 “양측 의견을

조정해 봐야겠지만 현재로선 견해차가 좁혀질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

번 일을 상임위 중심 국회 운영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복지위 소속 한나라당 유일호 의원은 “‘당론 우선’의 관행에서 벗어나 의원들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경쟁을 벌이는 실험으로 볼 수도 있다”며 “다만 재정위가 처음부터 복

지위 법안에 의사표명을 했으면 상황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정위 측은 “작년에는 재정위가 종합부동산세 세제(稅制) 개편안을 처리하느라

다른 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정위 소속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은 “이번

법안 논란은 효율성에 무게를 둔 재정위와 기존 조직의 안정과 분배를 중시한 복지위 간의

정책 대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기사입력 2009-03-20 03:00